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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리 Sep 06. 2022

글에서 나는 냄새

당신은 어떤 냄새를 풍기고 싶은지요


  모든 사람들은 각각의 문체를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한 언어권 내의 사람들은 분명 같은 글자를 사용하는데, 어찌 그리 풍기는 냄새가 제각각인지 매번 재밌고 신기하다. 단호한 사람의 글에서는 살짝 불에 그을린 장작 냄새가 나고, 유머러스한 사람의 글에서는 방금 튀긴 팝콘 냄새가 난다. 나는 글의 냄새를 맡으며, 글을 쓴 사람이 전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집중하기보다 글에서 나오는 정서나 분위기를 더 흠뻑 느끼려고 한다.


  내 글에서 났으면 하는 냄새는 따뜻한 봄날 숲에서 나는 풀냄새이다. 독특한 냄새는 아니지만 맡으면 편안해지는, 너무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적절한 온각과 함께 느껴지는 습습한 냄새 말이다. 내 글이 무언가를 강렬하게, 인상 깊게 전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많은 전문가들이 인상 깊은 좋은 글들을 충분히 쓰고 있고, 나 또한 그들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던져 주며, 해박한 지식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은 내 소질이 아니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을 것 같은 마음의 한 조각을 찾아주고, 그것이 네 것임을, 또 내 것임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나는 살면서 정말 다양한 종류의 글을 써봤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학창 시절 교내·교외 백일장 대회에서 산문, 운문, 편지 쓰기, 시화 그리기 등 다양한 부문의 상을 받았고, 성인이 된 이후에 더욱 장르를 확장시켜 레포트, 논문, 블로그 홍보글, 그리고 최근 도전했다가 망해 버린 로맨스 웹소설까지 섭렵(?)했다(결과물이 양질이었다는 보장은 없다.). 상담사로 일하면서는 매주 4~5개의 상담 회기 보고서와 심리검사 해석보고서까지 작성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글에 파묻혀 온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블로그 홍보 알바는 공백 제외 2,000자의 원고를 매 월 50~90개씩 제출해야 했던, 정말 너무나도 고단한 일이었다(마감기한을 맞추느라 연구실 회식 때 술집 테이블에서 원고 쓰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 에너지와 시간으로 브런치를 진작에 알아서 연재를 했더라면 ‘다작상’이라도 받았을 텐데.


  그렇게 나름 키보드에 손깨나 얹으며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왔지만 어느 순간 글을 쓰는 것이 지겨워졌다. 키워드 몇 개를 두고 글자 수를 엿가락처럼 늘려야 하는 홍보 글도, 내 의견 한 스푼에 기존 문헌이 열 국자쯤 들어가는 논문도, 교수님을 설득하기 위해 온갖 아는 체를 하느라 꽤나 꼴불견인 내 레포트도. 목적에 맞는 글일 수는 있어도 향기가 나는 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은 글에서는 자신만의 문체와 향기가 진동을 하는데, 내가 쓰는 글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젠장. 이러다가는 점점 나만의 문체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글 쓰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글쓰기는 나의 생각, 마음, 역량을 꺼내보고 정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모든 것이 내 손 끝에서 나 온 내 글이기는 하지만, 손 끝이 아닌 마음 끝에서 나오는 글이 좋다. 그런 의미로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에세이야말로 ‘나’라는 사람의 개성과 문체가 들어간, 내 글 냄새를 풍기기 위한 방식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장르라는 결론이 났다. 내가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주제들이라고는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이지만, 별 거 아닌 것 같은 담백한 냄새가 나의 것이라면 우선은 그것만을 풍기더라도 충분하겠다. 조금은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글을 쓰고 있는 세상에서 번데기 앞 주름 같은 이야기이지만,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데 있어 서른이 훌쩍 넘은 내 나이가 그리 이르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조급함까지 어여삐 여기며 내 글에 담아낼 생각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마음을 다루는 데 너무나도 서툰 우리들의 이야기여서, 그리고 작가 지망생의 수다 기록 같은 것이어서 참 소박하고 좋다(필력까지 소박하면 안 되는 데 그것은 좀 걱정이다.). 소담스럽게나마 내가 쓰고자 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글자들을 찍어내다 보면 어느새 내 글에서 ‘봄 숲 풀 냄새’가 물씬 나지 않을까. 앞으로 내 글, 그리고 나와 같은 초보 에세이스트들이 쓰는 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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