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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다 Aug 20. 2024

나의 파란 레미콘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 본 엄마의 시선






"안돼 우주야, 여기서 엄마 기다리자."


  나는 애가 닳았다. 저 문 밖으로 당장 나가야 하는데 나를 잡은 이 큰 손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도대체 나를 왜 옴짝달싹 못하게 잡아두는 걸까. 일곱 걸음 정도면 닿을 거리를 난 가지 못하고 있다. 누가 가져갔으면 어떡하지.  아니면 누가 밟았으면 어쩌지. 안 그래도 조금 전 매장으로 들어온 덩치 큰 아저씨가 있었다. 혹시나 내 소중한 부품을 가져갔을까 싶어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두툼한 그 손에 들린 건 휴대전화와 돈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뿐이었다. 카페 직원 누나에게 말을 걸고 자리로 들어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보았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보이는 큼직한 운동화 바닥에는 파란색의 어떤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아직 밖에 있을 것 같다.





  낮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엄마는 서둘러 내 기저귀와 옷을 갈아입히고 집을 나섰다. 내 손에 들려있던 덤프트럭을 본 아빠는 집에 두고 가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차에 먼저 올라타서 하루 새 데워진 차 안의 공기를 서둘러 시원하게 만들었다. 다 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엄마는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감싸며 나를 카시트에 앉혔다. 엄마는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라고 그때까지 잘 참아달라고 내게 부탁하며 살짝 뜯어 놓은 사탕을 손에 쥐어주었다. 창 밖으로 요란한 소리가 나는 공사장도 구경하고, 커다랗게 땅을 파내는 중인 포크레인도 만나고, 엄마가 주는 간식을 오물오물 받아먹으며 박물관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전시실 보단 기념품매장에 눈이 갔다. 수많은 공룡 인형과, 호랑이 인형들 너머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을 보러 가기 위해 잡힌 손을 빼내려고 아등바등 힘을 썼다.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아빠는 나를 들쳐 업고 곤충이 많은 곳으로 들어갔다.


"저 나비 좀 봐바. 우주가 좋아하는 파란색이네."


  아빠는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이라며 구경하라고 했다. 벽면 가득 여러 가지 곤충이 붙어 있었지만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벽에 붙은 날갯짓 없는 나비와, 소리 나지 않는 매미는 재미없었다. 아빠가 화장실에 간 사이, 엄마는 별 반응이 없는 나의 손을 잡고 기념품매장으로 들어갔다.


"우주야 가지고 싶은 거 골라봐."


  나는 아까 보았던 바로 그 위치로 달려갔다. 파란색 레미콘 장난감이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장난감 상자를 들고는 가슴에 꼭 안았다. 이 친구를 반드시 데려가야 했다. 다급한 나의 눈빛을 이해한 엄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계산 후에 상자 속 레미콘을 꺼내어 내게 건네주었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더 이상 전시된 동물은 보이지 않았다. 내 관심은 오직 파란 레미콘뿐이었다.


  아빠에게 안긴 채 새로 산 파란 자동차를 가지고 노느라 엄마가 옆에 없는지도 몰랐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개를 들고 보니 아빠와 나 단 둘 뿐이었고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어디로 간 건지 아빠가 말해주면 좋겠는데 아빠는 나를 안은 채 앞으로 걸어만 갔다. 불안한 나는 장난감을 꼭 쥐었다. 그때  빠직 소리와 함께 레미콘에서 콘크리트가 나오는 부분의 부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곳을 보았다. 카페 입구 바로 오른쪽 아래에 떨어져 나간 부품이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아빠는 듣지 못했는지  자동문 버튼을 놀러 그대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의자에 나를 앉히자마자 나는 내려와 입구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아빠가 나를 잡지 않고 뒤에서 지켜만 봤다. 입구의 문을 밀어 보고 두드려 보는데 문이 안 열린다. 아빠가 버튼을 눌러서 들어왔는데 이번에도 버튼을 눌러야 열리는 걸까. 다시 돌아가 이번엔 내가 아빠 팔을 잡았다. 입구로 같이 가자고 잡아끌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저 높은 스위치 좀 눌러달라고 말을 했는데 아빠가 다른 말만 한다. 나가면 안 된다고. 엄마 기다려야 한다고. 부서진 레미콘을 들어 올려 아빠 눈앞에 보여줬다. 무얼 해달라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아빠의 눈빛. 놀아달라는 줄 알고 레미콘을 받아 들고 부릉부릉 소리를 내고 있다. 답답한 나는 부품이 빠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리고 바로 그 손끝으로 문 밖을 가리켰다. 빨리 저 조각을 가져와야 하는데 아빠는 왜 내 말을 듣지 못하는 걸까.


  그때였다. 유리문 밖으로 엄마 얼굴이 나타났다. 엄마가 문을 열었다. 아빠가 그제야 내 팔을 놓았다. 나는 전속력으로 문을 향해 달렸다. 떨어져 나갔던 파란 부품이 그대로 있었다. 문이 다시 닫히기 전에 나는 잽싸게 그 파란 조각을 주워 들어왔다. 큰일 날 뻔했네 휴.  



  엄마는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했는지 그 자리에 서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파란 레미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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