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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의 미학

-삶-

by 희수 Feb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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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매를 맞다 보면 맷집이라는 게 생긴다. 그러나 아무리 맷집이 두툼해져도 맞을 때마다  여전히 아프다. 단지 매의 강도를 전보다 좀 약하게 느낄 뿐...








괴이함

예전부터 소화가 잘 안 됐기 때문에 처음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과 달리 역류성 식도염이 3개월이 넘도록 낫지 않았고 나중엔 등도 아팠다. 병원에 갔더니, 추적 관찰 중이던 담당 용종이 2배로 커져 있었다. 또한 간과 신장에는 혈관종과 낭종이 주렁주렁, 췌장에도 이상 소견이 보인다며 상급병원 진료를 권유받았다. 그때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 둘째 아이였다. 아직도 절대적으로 내 손길이 필요한데...

 ' 아! 어쩌나! '


자폐성 장애의 경우 평균 수명이 보통 사람들보다 짧다. 그래서 최대한 내 곁에 오래오래 머물다 가기를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내 손으로 보내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 기대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무슨 근거로 아이보다 오래 살 것이라 자신했는지 내 오만함에 어이가 없었다.

우선 복부 CT 후, 병변을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해 MRI 검사를 했다. 소음 가득한 하얀 관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러한 검사 과정을 겪으며 우울증이 좀 심해졌다. 하늘이 무심하다는 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혹시 수술을 받게 될 경우 홀가분하게 입원도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처량했다. 무던한 성격인 남편도 걱정이 됐는지 잠을 잘 못 자는 듯했다. 이럴 땐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몹시 부럽다. 의지처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할까?


결과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고맙게도 6개월 단위로 추적 관찰을 요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위치가 췌장인 만큼 다른 병원 진료도 받아보자고 했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악성 종양이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근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작년에 큰 아이가 쓰러져 휴학을 했고, 남편도 협심증으로 스텐스 시술을 받았다. 이런 일들을 연이어 겪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귀함

정신건강에 이어 몸까지 안 좋아졌지만  아이가 장애진단을 받았을 때보다는 덜 놀랐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끼지는 않았다. 늙어가니 아픈 게 당연한 것이고 언젠가는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순간순간 생각했었다. 후드득 눈물은 떨어졌지만  예전처럼 살이 단숨에 10kg이나 빠질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이러한 건강이상 때문에  둘째 아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내가 없을 때를 위해 구체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난 이 아이 덕분에 많은 경험을 했다. 앞의 글에서 밝혔듯 춤과 문학을 뒤늦게 접했고 오랜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전원주택으로 이사도 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이었다. 정원 한쪽에 놀이터용 그네를 설치했고 별채를 노래방으로 꾸몄다. 모두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아파트에선 층간소음 때문에 늘 조심하며 살았는데,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돼서 좋았다. 물론 불편한 점도 많다. 마트가 멀고 여름엔 물난리, 겨울엔 동파 위험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 이곳에서 그네를 타고 별채 노래방에서 노래를 엄청 크게 듣는 아이는 이제 20대 청년이 되었다.


 말로 형언할 없을 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는 이불이나 방석이 조금이라도 흩어져 있으면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것부터 바로 놓는 신기한 인간 유형이다. 음악도 마음에 드는 부분을 무한 반복 듣고 드라마 대사 역시 한 부분만 수없이 돌려 듣는다. 이렇게 독특한 아이의 최고 특이점은 엄마인 나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는 데 있다. 태어나 누군가에게 이토록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기에 가끔은 감격스럽다.


또한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 덕분에 남편과도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 오늘 나한테 먼저 인사했어, 그런 적 없었는데, 울 아들 많이 똘똘해졌네."

남편이 호들갑 떨며 아이를 칭찬할 때, 나도 박수를 치며 거들곤 한다.

이렇게 주어진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 난 남편과 달리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남과 다른 나만의 삶을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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