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 지금 안갯속을 헤매는 상태라고 보면 돼요. 어떤 일이든 혼자 결정하지 마세요. 실수할 확률이 높아요. 그리고 남편분께 현재 상태를 꼭 말씀드리세요." 첫 상담 후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춤
1년쯤 지나자 의사는 의존성이 강한 수면제를 복용약에서 뺐다.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 한 알씩 처방 됐고 나중엔 단약도 시도해 보자고 했다. 그러나 기질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우울감을 갖고 있었고, 병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둘째 아이도 양육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라고 했다. 어쨌든 늪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먼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모든 냉장고에 열쇠를 부착했고, 방충망은 열리지 않게 못을 박았다. 말썽의 중심지였던 주방엔 식탁을 없애고 그 자리에 소파를 놓았다. 눕는 게 여전히 제일 좋았던 난 주방 소파에 누워 아이로부터 싱크대를 사수했다.
아이는 자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장애 전담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다. 멀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이에게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다정함과 사명감을 겸비한 선생님들 덕분에 그곳에서 편안히 4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댄스 스포츠 학원에 다녔다. 의사의 염려와 달리 남자학원생이 없었다. 모두 여자들 뿐이라서 난 남자 파트를 배워야 했다.
내 파트너는 나보다 5살 많은 언니였다. 언니는 나와 마찬가지로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엄마를 서슴없이 '독'이라 칭했을 만큼 엄마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음대출신이면서 남편이 의사였던 언니는 누가 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나처럼 엄마와의 정서적 교감에는 실패한 상처받은 영혼이었다. 춤과 독(엄마)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가끔 춤은 뒷전에 두고 수다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의사는 우울증에 수다가 좋다며 많이 떠들라고 했다.
그러나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가끔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전혀 신나지 않는데 몸을 흔드는 내가 기괴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곳을 2년 동안 다녔다. 춤은 모르겠고 체형교정에는 많은 효과를 보았다. 무엇보다 춤 덕분에 흥 많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요란한 화장을 하고 화려한 댄스복을 입고 무대에 서보기도 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문학
입시 때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취직이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했었던 터라 그때는 별 고민 없이 국문학과에 편입했다. 곧 40이 되는 나이였다.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젊은 청춘들과 수업을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진정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확실하다. 지금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절대 못 낼 용기다. 대충 다니지도 않았다. 졸업장이 필요했던 게 아닌, 하루살이처럼 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중요했기에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세상 재미가 사라진 후, 즐길 일이 없어 활자만 읽고 또 읽었을 뿐인데 암기가 엄청 잘 됐다. 중간, 기말고사는 물론이고 빼곡히 써야 만점을 받는 현대문학사 쪽지 시험도 빈틈없이 채웠다. 시험뿐 아니라 예전엔 관심이 없었던 글자를 쪼개고 쪼개어 분석하는 음운론 수업도 집중이 잘됐다. 4학기 중 첫 학기를 제외하고 모두 장학금을 받았다. 그때 생각했던 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잡기를 아예 모르거나 아주 늦게 알게 되는 사람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졸업식에 안 갔더니 조교에게 연락이 왔다.
" 아! 안 오면 어떡해요, 최우수 졸업생이라 총장님 표창장이랑 상품 받아가야 되는데, 지금 과사로 오세요, 사진 촬영도 해야 해요."
이미 졸업식은 끝난 후였지만 사각모와 가운을 착장하고 인문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학과 소식지에 올린다고 했다. 상품은 만년필이었다.
기세를 몰아 대학원도 입학했다. 그러나 한동안은 좀 심하게 말해 울면서 다녔다. 수업은 소논문이나 발췌문 작성 후 발표하고 질의를 받는 형식이었는데, 수업시간 내내 작성한 글에 대한 혹독한 평가와 질문이 뒤따랐다. 정신없이 두들겨 맞는 느낌이었다. 학부 때보다 공부량이 훨씬 많아졌으나 발표 때마다 깨지고 또 깨졌다. 의사에게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정신건강을 위해 포기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좋은 스트레스라며 '극복'하게 되면 오히려 더 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 1학기가 지나자 적응이 됐다.
학부 포함 문학을 6년 공부했다.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학위는 받지 못한 채 과정만 수료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이 뒷바라지를 위해 그만두게 되었다. 후회는 없었다.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렸던 삶의 의욕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