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세상읽기 2020년 28주

선을 넘은 대학시장의 욕망 / 김율

by 지렁이

1. 기사 링크


2. 핵심 대목


"대학교육이란 지식의 단순 전달이 아니라 지식의 생산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능력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실기’의 과정에서 싹트지, ‘인강’을 통해 이식되지 않는다. 화면 속의 교수가 지식의 동요를 일으키기 어려운 것은, 피아노 터치를 교정해줄 수도 없고 권투 스파링 상대가 될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3. Review


저도 화면 속의 교수님은 지식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화면 속의 인강 강사님은 지식의 동요를 가져왔습니다. 대학시절을 돌이켜 보면, 사실상 교수님들에게서 지식의 동요를 받은 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왜? 일까요.


그저 앞에 서서 교재만을 읽거나, 학생들과의 소통 없이 수업 시간 내내 혼자 줄줄줄 말하거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강의를 하는 분의 강의에서 느낄 점은 없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든 졸린 눈을 부릅뜨고, 말없이 죽어라 받아 적는 수밖에 없었죠.


왜?


교수님들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지 강의를 잘하는 분들은 아닙니다. 물론 모든 교수님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의를 잘해야만 하는 동기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거쳐 올라온 인터넷 속 인강 강사들은 너무나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유익했습니다. 이런 식이 원리가 있었구나, 이런 식의 구조화해서 생각할 수도 있구나, 저는 그분들의 강의를 통해 지적인 쾌감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습니다.


대학교육이 지식의 생산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공허한 이상론일 뿐입니다. 현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높은 학점이 필요합니다. 교수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제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교수님이 원하는 바를 적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자유로운 토론 수업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학창 시절 교실보다 몇 배나 많은 학생들이 한 강의실에 앉아서 교수님의 강의를 드는 것이었죠. 학생들은 장학금과 취업을 위해 사람 수가 많고, 학점 따기 수월한 수업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취업을 위한 도구가 된 대학에서 진지하게 학문을 공부할 곳은 없었습니다.


즉 자유로운 생각 및 토론은 대부분의 학생에게 현실적으로 허락되지 않았고, 그럴 동기도 의지도 없습니다. 소수의 학생들만이 그런 자유로운 토론 수업을 꿈꾸었고, 그들이 모였을 때에만 학생들 사이에서 지식의 동요가 있었습니다. 자율성은 그럴 환경과 자세가 되어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허나 한국에서는 자율성을 키워줄 수 있는 토양 자체가 없습니다. 오로지 자생적으로 나타나는 몇몇 소수의 학생에게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은 다르셨나요? 달랐었다면 좋겠습니다.





4. 그밖의 글 소개


"작금의 공정성 이슈는 결과의 평등보단 과정의 공정을 더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공정한 경쟁이라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도 승복하지만, 경쟁에 뒤처진 이들을 우대하는 건 무임승차라고 본다. 노력한 만큼의 보상, 즉 ‘비례의 원리’는 사실 진일보한 가치다. 과거 권력과 혈연, 돈의 힘이 모든 걸 결정하던 시절 ‘능력주의’는 결과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비례의 원리는 이젠 ‘보편의 원리’(결과의 공정)와 종종 충돌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는 데 불공정의 기제가 작동하는 것처럼, 불평등을 바로잡으려는 국가나 사회의 노력을 부정하거나, 노오오오력으로 바꿀 수 없는 구조적 불평등을 외면하게 된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도 불평등 구조의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예요. 비정규직인 상태에서는 미래를 예상하고 설계할 수가 없어요. 은행에 적금을 붓거나 어디서 어떻게 살지 결정하기 어렵죠. 미래에는 상황이 나아질 거라 기대할 수도 없구요. 조직 안에서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목소리를 내서 상황을 바꾸기도 힘듭니다.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민권이 없고 결코 오를 수 없는 신분제 사회 안에 놓이게 되는 거죠. "


"정부가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는 인국공 보안요원의 수는 1900여명입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9년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수는 748만명을 넘습니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36.4%를 차지합니다. 1900명을 정규직화해도 747만8천여명이 남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기업과 노조,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의 양보와 희생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방향과 계획을 제시하고 이해관계의 조정을 시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토론은 간데없고 특정 공기업의 사례만을 놓고 상대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편안한 주거 환경을 누릴 수 있을지, 왕복 3시간 출퇴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을지, 사회초년생들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살 곳을 마련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등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청와대 고위직들이 집이 몇 채 있는가에만 쏠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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