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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부엉이 J May 17. 2023

MZ세대의 취향 추구가 가져온 '무연 사회'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내 취향에 맞는 영화를 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며, 퇴근 후 회사사람들과 회식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가집니다. 


취향의 시대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개인주의 가치관'이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발전하였습니다. 


경제구조가 변화하며 여러 명의 아이를 낳는 것보다 1~2명 아이를 낳는 것이 효율적인 선택이 되었고,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신세대들은 집단의 가치보다는 '나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개인주의 가치관이 커졌다고 해도, 가치관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사회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목이 말라 물을 먹고 싶다고 해도, 주위에 물이 없다면 탈수 증상은 해소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개인주의 가치관은 개인화된 기기인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던 방법은 컴퓨터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는 가족 모두가 사용하는 것이지, 나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모든 사람에게 컴퓨터를 줘어 주었습니다. 심지어 컴퓨터와는 달리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죠. 예전에는 TV 앞에 모여 내가 원하지 않은 방송을 봐야 했는데, 이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보편화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발전을 부릅니다. 나만의 기기를 통해 인터넷에 자유롭게 접속하며 플랫폼에 모이기 시작한 것이죠. 페이스북을 시작으로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다양한 SNS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자사의 플랫폼에 머무르게 하고자 빅데이터를 활용하였습니다. 빅데이터 처리 기술을 고도화하여 초개인화된 콘텐츠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죠. 바야흐로 취향으로 시작해서, 취향으로 끝나는 취향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취향의 시대에는 관계도 당연히 취향을 중심으로 맺어집니다. 내 취향에 맞는 사람과 어울려야 나 자신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너무나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서서히 끊어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친했던 친구도 몇 년만 지나면 대면대면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을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가끔 생각날 때 SNS 계정에 가서 좋아요와 메시지만 누르면 되는 것이죠. 




즉,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비교도 안되게 늘어났습니다. 단적으로 초등학교 4학년부터 같은 반 친구들을 30명으로 가정했을 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스마트폰에 저장된 '또래친구'만 해도 270명입니다. 당연히 학원 친구, 학교 선후배 등등을 뺐으니 최소로 잡은 숫자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던바의 수'가 150명이라는 것이 상징하듯, 시간과 비용이 한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취향'을 중심으로 인맥을 관리하기 시작합니다. 수없이 많이 맺어진 관계들을 내 취향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 트렌드코리아 2023에 수많은 관계에 인덱스를 붙여 관리하는 '인덱스 관계'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에게 마냥 좋아 보였던 취향 중심의 관계가 생각하지도 못한 그림자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아무런 인연이 없이 고립되는 무연(無緣) 사회의 등장을 부른 것이죠. 



출처: 지식채널 e


1) 사람마다 다른 커뮤니케이션 역량으로 인한 고립 심화


전통적인 관계는 '선천적', '집단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의지랑 상관없이 관계가 설정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태어났을 뿐인데 할아버지, 이모 등 친척이 있고, 고향 사람이 있는 것이죠. 


하지만 취향에 기반한 관계는 '후천적', '개인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나에 맞는 사람들과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어갑니다. 예를 들어 앱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같이 할 사람을 찾는 것이죠. 


그런데 모든 사람이 관계를 잘 형성해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격적, 환경적 요인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 형성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러면 졸업 등으로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관계가 점차 줄어들면, 관계 형성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고립되기 쉬어진다는 의미입니다. 



2) 취향을 넘은 관계 맺음의 약화


취향 중심의 관계는 당연히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게 됩니다. 배제당하는 사람도 본인의 취향에 맞는 관계가 있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바로 고립이 됩니다. 예를 들어 지속적인 취업 실패로 스스로를 감춘 '은둔 청년'처럼 말이죠. 


또한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합니다. 학교, 군대, 회사에서 만나는 전통적 관계는 나와 맞지 않아서 고통을 주기도 했지만, 원래라면 절대 친구가 되지 않았을 사람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취향 중심의 관계는 철저히 내 의도대로 설정되어, 우연한 만남을 사라지게 합니다. 내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는 있겠으나, 스스로가 가진 한계를 넘어 성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는 기회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 데일리팜(https://www.dailypop.kr/news/articleView.html?idxno=38381)


그 어떤 시대보다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지만, 관계의 무게는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대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성을 사귈 때에도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이 있으면 바로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찾습니다. 


관계를 철저하게 가성비로 보는 세상에서 성격이 소심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고립되기 쉬워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더 좋은 사람이 있는데 굳이 그 사람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관계의 양극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전통적 관계가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사회가 취향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나타나는 이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취향 사회는 극도로 개인화되는 관계를 의미하며, 그 이면에는 관계 설정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죠.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은둔 청년, 그리고 노년층의 고립사 문제를 볼 때 무연(無緣) 사회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등장할 초고령사회 속에서 모든 인연이 끊긴 채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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