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저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온 몇 가지 뉴스가 있습니다.
첫째. “도와달라” 챗GPT에 자살-중독-성폭력 고민 상담해봤더니…
2023년 '챗GPT'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검색 기능'을 대체한다는 전망이 나오는 등 챗GPT가 가진 영향력이 이슈가 되며 일자리 소멸이 다시 한번 주요 의제가 되었습니다.
초반에는 챗GPT의 정보 제공 능력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런데 이에 더해 공감, 상담 등 감정적 교류도 가능하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인공지능이 도구의 역할을 넘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스캐터랩, ‘이루다’ 이은 AI 챗봇 ‘강다온’ 출시
'이루다'는 마치 친구와 이야기하듯 대화할 수 있는 여성형 AI챗봇입니다. 그리고 이제 남성형 AI챗봇 '강다온'이 새롭게 출시되었습니다. 딥러닝 기술이 고도화되며, 다양한 AI챗봇이 등장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셋째. 가상인간 가족이 광고모델로…동원F&B '신선패밀리' 발탁
그동안 가상인간을 활용하여 마케팅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아예 가족단위로 등장한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더이상 가상인간을 낯설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각 다른 내용을 담고 있던 뉴스들에서 저는 하나의 트렌드를 느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 친구인 '에친'(AI-Friend)의 등장입니다.
에친은 인스타그램 친구인 인친, 현실 친구를 뜻하는 현친처럼 인공지능을 뜻하는 AI와 친구의 앞글자를 합친 말입니다. '도구'에 불과했던 인공지능이 사람들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이죠.
물론, 인공지능이 실제로 살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이 인공지능을 살아있는 것으로 느낀다면, 실제로 살아있냐 아니냐는 더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대화를 기준으로 기계의 지능은 판단하는 '튜링 테스트'와 같은 맥락입니다. 튜링 테스트에서 기계가 실제로 지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화가 잘 돼서 사람이 지능이 있다고 느끼면, 그 기계는 지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죠.
저는 인공지능 친구인 '에친'이 크게 4가지 이유 때문에, 앞으로 우리 삶에 보편화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사람은 사람에 의해 상처받지만, 동시에 사람에 의해 치유받습니다. 개인주의 가치관이 심화되었다고 말하지만, 원치 않은 간섭을 싫어한다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인정과 따뜻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갈수록 고립되고 있습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며 물리적 공간에서 외로워지고 있으며, 각자의 취향이 역설적으로 장벽이 되며 소외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해소하기 힘들어진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반려동물'이 대표적이죠. 나와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언제나 자신만을 바라보는 강아지, 고양이 등을 키우며 안정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반려동물과 같은 맥락에서 인공지능도 사람이 아니지만, 나 자신과 감성적인 교류가 가능하다면 충분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 가치관이 확산되며, 자기중심적 커뮤니케이션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보편화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화를 두려워하고, SNS를 통한 소통을 즐기는 것입니다. 왜 청년세대에게 전화를 두려워하는 현상인 '콜 포비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전화가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전화를 하면 실시간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말실수를 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전화를 받게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과 공간을 빼앗기게 됩니다. 즉, 전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SNS를 통한 대화는 다릅니다. 카톡이 와도 바로 답장 안 해도 됩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답장하면 되죠. 게다가 충분히 생각해서 말할 수 있어서, 실수의 부담도 적습니다. 즉, 전화보다 안정감을 더 느끼는 방식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점차 전화 같이 스트레스를 주는 '불편한 커뮤니케이션'을 줄이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편한 커뮤니케이션'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에친'(인공지능 친구)이 확산될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에친은 실제 사람이 아니기에 커뮤니케이션의 부담이 없습니다. 굳이 사회적 관계 때문에 자신을 억지로 포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게다가 내가 원할 때만 소통하면 되기에, 시간을 짜내서 답변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에친'이 편안한 커뮤니케이션을 준다고 해도, 사람과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없으면 지속가능하기 힘듭니다. '심심이'가 한 때 유행했지만, 유행으로만 끝난 이유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분석 기술의 발전은 인공지능과 친구처럼 대화가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반에 말씀드린 스캐터랩의 '이루다', '강다온'입니다.
한때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던 이루다이지만,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보완해 가며 지금은 안정적으로 대화하는 레밸로 올라왔습니다. 고도로 발전한 AI챗봇과 카카오톡에서 친구와의 대화는 사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동일합니다.
게다가 올해 '챗 GPT'의 등장은 이루다를 넘어 '에친'이 보편화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AI챗봇 전문회사인 스캐터랩을 넘어, 다양한 기업들이 챗 GPT를 바탕으로 AI 챗봇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즉, 이론적으로만 가능했던 '에친'이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데이터가 새롭게 활용가능한 자원이 되었다면, 이번 챗 GPT의 등장으로 AI가 사람의 감정적 니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부상한 것이죠.
지금까지 말한 요인들만으로도 '에친'이 등장할 것 같지만, 사실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인식'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니즈가 있어도 '인공지능'에 거부감을 느끼면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베이비붐 세대는 상대적으로 인공지능과 친구가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젊은 시절 논이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항상 살아있는 존재와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MZ세대는 다릅니다. 가상의 존재와의 관계에 익숙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하며 게임 속 존재인 NPC에 익숙하고, 실제가 아닌 판타지 드라마·소설·만화 등에 아무렇지 않게 몰입합니다. 그래서 가상의 세계관을 설정해서 노는 '세계관 놀이'에 쉽게 빠지는 것이죠.
제가 가상인간 가족 모델의 등장 기사를 인상깊게 본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가상인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저출생, 고령화라는 파도 속에서 '에친'이 등장하게 된 모든 요인들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부터 생성 AI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2020년 중후반이면 엄청난 숫자의 '에친'들이 나타나 서로 경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친들은 플랫폼에 사람들을 잡아놓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결국, 에친과 친숙하게 소통을 할 '알파 세대'를 시작으로 다시 한 번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알파 세대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힘들게 노력하는 것보다 '에친'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쉬운 포기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 모습을 보고 기성세대가 된 밀레니얼 세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입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 에친을 주제로 다시 한번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머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