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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부엉이 J Mar 03. 2018

기계(인공지능, 로봇)와 일자리의 미래(2)

일자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로봇세, 기본소득,  교육개혁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낙관론도 존재한다. 
앞으로의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생활양상의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1부에서 연결됩니다)

첫째. 로봇세를 걷어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기본소득 제공의 목적은 시장노동을 통한 소득획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산량에 비해 부족한 구매력을 인위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기본소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로봇세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은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거나, 시장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여 사람을 대체함에 따라 사라진 기능들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로봇세는 로봇을 독립적인 경제활동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존재로 보고 부가가치세를 제공할 수 있고, 재산으로 간주하여 자동차세처럼 세금을 부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업종별로 도입하는 정도와 형태가 다르기에 실제로 부과하려면 여러 난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로봇세의 도입은 시장에서 자연적인 교정이 불가능하기에,  사회가 변화에 충분히 대비할 시간을 벌게 하고자 자동화 속도를 늦추고자 하는 목적도 존재합니다. 그동안의 기술진보는 노동의 효율성을 높여주었지만 로봇은 인간 자체를 대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봇세를 반대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로봇세는 관련 산업의 혁신을 저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봇의 확산은 생산요소 중 하나인 자본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인데,  그렇게 증가한 파이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재분배시킬 것인가를 생각해야지, 발전하기도 전에 파이를 축소할 생각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로봇과 인공지능은 자연스럽게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창출된 부를 재분배시킬 방안을 고민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기업은 경쟁에서 도태될 수 없기에 로봇과 인공지능 도입은 필수적입니다. 이 상황에서 국가적으로 봤을 때도, 확산을 인위적으로 늦추는 것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습니다.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과거의 사례를 보았을 때,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저항은 옳다기보다는 현 체제에서 이권을 독차지한 기득권층의 저항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두번째는 교육개혁입니다. 재교육과 제도개혁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합니다. 실제로 지금도 기업은 기술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지만, 교육시스템은 과거에 머물고 있어서 기술을 가진 인력풀은 협소한 실정입니다. 어쩌면 자동화는 노동자의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재교육은 실업자 뿐만 아니라 사회 모두가 해야하는 것입니다. 기술은 계속 빠르게 발전하고, 신산업은 계속 등장하니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이 나올 떄마다 즉각적이고 지속적으로 습득해야 합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인공지능기술 및 정보기술 능력을 갖춘 실무자입니다. 이제 전통적인 교육은 필요가 없습니다. 단순지식암기는 로봇이 더 잘합니다. 앞으로 갈수록 배울 것은 무한히 많아지나 인간은 무한히 배울 수 없습니다. 교육이 극단적 세분화, 전문화, 지엽화됩니다. 고로 인간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인공지능이 뛰어난 것은 그 기능을 맡겨야합니다. 즉 국가는 시민들이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교육제도를 개선하고 지속적으로 재교육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일자리 잃은 사람은 새 기술을 배울 기회를 얻기 힘들기에 저소득층,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강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노동자가 적응하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입니다. '변화'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 그 '속도'가 문제입니다. 또한 둘째. 재교육의 효과가 미지수입니다. 예를 들어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사라질 것이 유력한 계산원의 업무와 인공지능 감독 및 운용업무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습득해야지 단기 직업 교육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닙니다. 즉 새롭게 생긴 일자리로 이동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재교육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해도, 모든 사람이 신기술 전문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에 소수의 전문가만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처리, 단순노동, 정확성이 요구되는 단순한 일자리에서 일합니다. 하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은 먼저 그 일자리를 대체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해결책들 외에도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됩니다. 첫째. 인공지능과 로봇이 전기와 같은 인프라 형태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안에서 앱이 만들어지듯, 생태계 안에서 중소기업들의 혁신이 활발히 일어나 양극화가 완화될 것입니다. 둘째. 사회안전망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19세기 기준의 사회보장제도에서 노년층은 많아지고, 일자리가 줄어가는 시대에 적합한 시스템(고용보험, 의료복지 등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여가시간을 확보하게 하여 소비를 늘리고, 또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자기계발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죠. 넷째. 이윤을 독점하는 기업에게 높은 세금을 걷고 그 돈을 다시 국민에게 재분배하는 것입니다. 


물론 일자리 문제에 대한 낙관론도 존재합니다. AI와 로봇이 첫째, 새로운 경제성장을 이끌며, 둘째, 전에 없는 서비스와 제품의 풍요를 제공하고 (ex)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로봇, 재난로봇.) 셋째, 일자리는 줄어든 만큼 새롭게 등장한 산업에서 생길 것이며, 넷째. 초고령화 사회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ex) 젊은층의 농사 기피 풍조에 대응하여 농업의 자동화, 고령층의 건강 관리에 도움을 줌에 따라 정부부담 및 세대간, 가족간 갈등 감소)  또한 다섯째. AI와 로봇이 부의 불균형 및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결하는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으며 여섯째. 24시간 일해도 불평하지 않는 로봇과 똑똑해진 인공지능은 인간을 지루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업무를 전면적으로 대체하기에는 멀었습니다. 한 직업이 한 기능만 수행하는 것은 아니고,  그 기능들도 대부분 수많은 맥락 속에서 결정이 됨에 따라, 그 기능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양한 능력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교사라는 직업은 학생을 가르키는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을 지도하는 기능, 학부모와 의사소통하는 기능 등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교사의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변하는 학생들과의 관계와 같은 수많은 맥락 속에서 변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공감력, 유머능력 등 인간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능력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갑니다. 단순히 정보를 알려주는 것과 상황에 따라 적절히 교육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당분간 AI와 로봇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부문에서 사람의 업무를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 것입니다.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은 많으나 완전히 자동화 할 수 있는 직업은 적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사실을 나열하는 기사작성은 로봇이 수행하고, 가치판단이 들어가는 심층기사는 기자가 수행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직업 속에서 따분하고 지루한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해주는 것입니다. 만일 전면적으로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수 있게 되면 그건 일자리가 아니라 인간이란 종의 존망을 걱정해야할 것입니다. 신체적인 능력에서 완벽하게 우위에 있는 로봇과, 완벽히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강(强) 인공지능이 탄생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비관론, 낙관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구체적인 사람들의 생활양상의 변화도 생각해 볼 필요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근로시간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과연 수도권인구집중문제, 출퇴근교통문제, 육아문제, 수요부족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또한 사람들의 고용구조도 온라인플랫폼을 중심으로 필요할 때 구인구직하는 형태로 바뀌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불안정의 대명사였던 비정규직이 앞으로는 자유로움의 대명사가 되고 정규직은 노동을 착취당하는 고통의 대명사로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소수에게 부가 집중된다면 소수의 지능만 확장되고 나머지에게는 지식 획득 기회의 단절을 초래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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