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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부엉이 J Apr 18. 2019

무엇을 보며 살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정확히는 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처음과 달리 같이 함께할 꿈과 말이 사라진 것 같아.’


마음이 울었다. 내가 느끼고 있었던 괴리감이 그 말 하나에 녹아있었다. 나의 변한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을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고 있었다.


대학시절 나는 꿈이 있는 사람이었다. 취업 준비가 시작되었을 때도, 꿈을 위해 글을 쓰고 꿈을 위한 회사를 찾았다.


하지만 현실은 학교의 보호막에 있었던 학생을 끌어내리기에 냉혹하고 참혹했다. 취업준비 기간은 내 자존감과 자신감을 극도로 갉아먹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은 대부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지독히도 무능했다.


어느 순간 내 삶 속에 글은 사라졌다. 수없이 쓰던 글이 사라졌다. 다른 길이 있었다. 심지어 제도권의 길과 제 3의 길의 사이에 있는 대학원도 있었다. 그 때의 나는 그걸 보지 못했다. 조급해지고, 불안해진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돌아보지 못했다. 돌아볼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어디든 취업을 해야 한다. 돈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한 가지 길로만 갔다. 차안대를 쓰고 목표점으로만 달리는 경주마와 같았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하지만 빠르게 마모되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그랬다. 난 참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난 어쩌다가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되었다. 비평준화 고등학교를 가서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상위권 고등학교를 갔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문이과로 나누면서 또 상위권 학생들이 분리되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으로 던져졌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난 그 관심이 좋았다. 그래서 공부를 잘 하고 싶어했다. 주위의 인정과 관심이 좋아서 제도권 내에서 성공을 바랬다. 하지만 그러면서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의 교육이 싫었다. 대안 교육을 바랬다. 진정한 교육을 꿈꾸었다. 모순이었다. 수업은 성실히 들었으나, 개인 시간에는 대안교육을 보며 재밌어하고 즐거워했다. 그 모순은 결국 수능 실패라는 결과로 다가왔다.


내 안에는 두 가지 욕망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지독히 세속적이면서, 지독히 비세속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성공하고 싶지만, 대안의 삶을 살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자유로운 바람을 밤하늘의 별들을 동경했다. 전형적인 삶의 루트를 증오했다. 그래서 내 주위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나를 비혼주의라고 생각했다. 난 그저 내가 선택하고 싶어 말한 거였다. 때가 돼서 남들이 다들 하니까 취업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은퇴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내가 선택하고 싶었다.  결정된게 아니라. 남들이 다 하니까 하는게 아니라.


하지만 취업을 준비할 때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 기업이 좋은 회사인거는 어느 순간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꿈꾸던 회사, 아니면 윤리적인 회사를 바랬다. 하지만 그런 회사는 적고, 문턱이 높았으며, 내가 부족했다. 주위의 유언, 무언의 압박은 나를 조급하게 했다. 나이가 있지 않나. 때가 있다. 취업을 해야 한다. 정신을 차리니 똑같아져 있었다. 남들과 같은 삶을 증오했던 사람이 남들과 똑같이 어디라도 취업해보려고 목을 매고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나를 기적과도 같은 취업이 가능하게 한 것은 취준기간의 노력도 있겠지만, 꿈이 있었던 학창시절의 나였다. 대안교육을 꿈꾸며 여러 교육 활동에 참여한 나였다. 100여개의 기업이 날 거부할 때 단 한 곳이 나의 가능성을 봐주었다. 그만큼 주류의 삶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일 것이다.  


짧지만 이제 어른이라고 불릴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난 과연 어른이 되어 있었을까. 다들 한 곳으로만 간다. 그 곳으로 가기 위해 다들 싸운다. 사실 다들 피해자일 뿐인데, 서로를 상처입히면서 고통을 준다. 고통이 연대되지 못하고, 서로를 찌르고 있다. 아픈 사람들은 스스로 내면에 고통을 사그라뜨리는데 익숙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수없는 고독의 시간은 역설적으로 외로움도 내면의 고통도 사그라트리고 표현하지 않는데 익숙하게 다. 그 벽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부터 시작된다. 고등학교 시절 조심스럽게 꺼냈던 자퇴의 말은 반대에 끝났다. 그 순간 나는 남들과 다른 삶에 대해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내가 모순적인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이다. 대안의 길을 원하면서, 동시에 세속의 길도 원했기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앉았다.


맞다. 좋은 의도일 것이다. 맞는 말이다. 50년, 60년, 70년 살아온 어른들의 경험이 녹아있다. 하지만 명절에 관심이라면서 대학, 취업, 결혼에 대해서 묻는 어른들에게 보이는 것은 그 개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다. 조그마한 목소리는 경험과 현실의 이름으로 피기도 전에 없어졌다. 아이는 표현할 줄 몰랐고, 어른은 물어볼 줄 몰랐다. 홀로 견딘 중학교 시절의 외로움은 고등학교 시절 주위의 관심에 중독될 수밖에 없게 한 것 아닐까.


하지만 그 모습이 나에게도 녹아있다. 벗어나고 싶어도 그림자와 같이, 늪과 같이 끈적거리면서 나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모순적이다. 모순이 고통스럽게 만든다. 고통스럽기에 고통을 잊고, 외면하고, 마주하지 않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시절 나는 약자의 고통을 잊지 않겠다고, 한 책자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함께할 꿈과 말을 잊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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