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부엉이 J Sep 26. 2019

XXXX년 XX월 X일

어떻게 살 것인가

2019.9.22. 2019.9.23. 2019.9.24., 2019.9.25. 2019.9.26. 2019.9.27., 2019.09.28. ....

9/22, 9/23, 9/24, 9/25, 9/26, 9/27, 9/28 ....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오늘은 2019년 9월 23일(월)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오늘은 2019년 9월 23일인가요? 아니면 9월 23일인가요? 아니면 월요일인가요?    


저는 월요일이었습니다. 평일 내내 기다렸던 주말이 끝나버린 날. 매번 다시 시작되는 지긋지긋한 월요일. 다시 돌아올 꿀맛 같은 주말을 위해 빨리 지나가야 하는 날.     


가끔 저에게 오늘은 9월 23일이었습니다. 여름방학, 학창시절에는 새학기가 시작된 날. 그리고 점차 중간고사가 다가오는 날. 사회에 나가서는 여름휴가 시즌이 끝난 가을의 어느 날.     


월요일은 다시 돌아옵니다. 9월 23일도 조금 길지만 다시 돌아옵니다. 저에게 시간은 계속해서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2019년 9월 23일은 다시는 제 인생에서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간은 저랑 상관없이 흐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동안 시간을 쪼개서 생각하며, 마치 시간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영원히 일요일이 반복될 것처럼, 영원히 9월 22일이 반복될 것처럼. 그렇게 내 인생이 영원할 것처럼.     


영원한 인생 속에서 하루의 가치는 거의 Zero가 되었습니다. (1/∞) 월요일은 제 인생에서 2019년 9월 23일이 아니라, 항상 반복되는 월요일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2019년 9월 23일은 주말이 오기 위해 빨리 지나가야만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시간을 쪼개서 인식하기에, 저는 흐르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마모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새로운데, 너무나 익숙해져 그 존재를 생각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일을 살지 말고, 일수를 살자. 일요일도, 9월 22일도, 2019년도 아닌 하루를 살자. 내 나이를 태어난 날로부터 지금까지의 며칠을 살았는지로 정하자. 그리고 죽을 날을 정하자. 그러면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제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저는, 많은 경우 무언가를 위한 하루를 살았습니다. 대학을 위한 하루. 취업을 위한 하루. 또 앞으로는 무엇을 위한 하루일까요. 하루하루가 어떤 날을 위한 도구가 되면, 마치 악마랑 계약해서 ‘결과’가 나타난 시점으로 움직이는 삶과 같지 않을까요? 그 삶의 결과는 누구보다 빠르게 죽음으로 다가가서, 누구보다 짧아진 인생을 사는 것일 겁니다.     


이렇다고 하루하루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지는 못할 것을 압니다. 힘든 하루가 제발 빨리 지나기를 바라겠고, 또 오늘보다 더 행복한 미래를 꿈꿀 것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오늘을 영원한 것처럼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을 단지 미래를 위한 수단만으로 여기지 않고, 오늘을 생각하고 느낄 것입니다. 이로써 제가 하루하루 과거보다 더 진정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을 보며 살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