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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부엉이 J Feb 06. 2019

어떻게 '일' 할 것인가

 삶은 곧 시간입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시간 활용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일’입니다. 인간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일하는 존재라고 정의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우리의 1년, 365일은 일을 기준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입춘·춘분·추석·음력 등 농경사회 때의 시간 흐름도 그렇고 현재 산업사회의 주중(5일), 주말(2일)도 일의 중요성을 반영합니다.


 그러기에 ‘일을 어떻게 대우할 것이냐’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일은 즐거움보다는 고통입니다. 우리는 월요일을 싫어하고, 퇴근을 기다리며, 주말을 기다립니다. 퇴근 이후는 일하면서 하지 못한 쾌락을 즐기거나, 일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다시 충전하는 시간입니다. 주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그 자체로 의미 있기보다는, 일을 위한 도구적·보조적 측면이 강합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야근이 밥 먹듯이 있고,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며, 사람 관계는 최악이고, 급여도 많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일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에 진보가 있다면, 앞으로의 세상은 일로 인한 고통이 없어지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 52시간 노동제, 최저임금 상승도 그 속도에는 논란이 있지만, 그 의도와 방향성은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로 인한 고통을 없애는 것은 구조의 문제라고 해도, 일로 인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개인의 영역입니다. 이왕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인생의 최소 1/3을 차지하는 ‘일의 시간’을 고통으로 보내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 해답을 과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일은 땔래야 땔 수 없기에, 수많은 사람이 일에 대해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검은색 사각형은 일 자체에 대한 정의를 나타냅니다.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들어냅니다. 또한, 일은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나는 대기업에 다닌다. 나는 국회의원이다. 이 말은 사회규범, 권력구조 속에 내포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은 일종의 상품이기도 합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의 상품으로써 연봉이라는 값으로 측정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주위에서 보이는 일에 대한 관점은 빨간 사각형에 있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수단’이란 관점이 강한 사람은 일로부터의 탈출을 꿈꿉니다. 출근은 고통, 퇴근은 행복이 됩니다. 두 번째 관점이 강한 사람에게 있어서 좋은 회사는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이기에 회사의 비전이나 도덕성에는 관심이 없고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로 항상 이직을 꿈꿉니다. 세 번째 관점이 강한 사람은 일은 그저 가족을 위해 견디는 측면이 강할 것입니다.


 물론 빨간 사각형에 있는 관점도 맞습니다. 그 관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을 위한 일이 돼서는 안 됩니다. 삼국지에서 유비와 조조가 여러 군웅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천하를 두고 다툴 수 있었던 이유는 이익 이상의 명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익으로 뭉친 집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익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를 내세운 집단이 진정으로 오래 갔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에 자기 자신이 없고, 돈뿐이라면 그 삶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물론 수많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말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자’라는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개인만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업을 포함해서 모두 바뀌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과 개인은 이윤 추구를 필연적으로 목표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 따라 개인은 기업이 자신들을 착취한다고 보고, 기업은 개인들이 기업을 이용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떠한 연대도, 고귀한 가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윤 추구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곧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윤 추구는 그 가치를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돼야 합니다. 그 속에서 기업과 개인은 연대하며 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자유로운 시민’입니다. 이 체제에서 우리는 개인으로 쪼개져 각자의 삶만을 위해 이윤만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사도, 선비정신 등 과거의 고결한 정신은 사라졌습니다. 물론 그 가치들은 엘리트층의 특권의식일 수 있습니다. 당연히 문자 그대로 계승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시대상에 맞게 계승해야 합니다. 그런데 계승을 고사하고, 그냥 소멸해버렸기에 현대사회에서는 어떠한 올바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진정한 어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이만 먹은, 몸만 자란 어린아이들만 존재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나라의 격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격입니다. 앞으로 도래하는 4차산업혁명 시기,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체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할 것은 창의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되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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