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세상읽기 2020년 7주

by 지렁이

1. 주제

: 사회적 소수자


2. 기사 링크


3. 핵심 대목


"트랜스젠더 여성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남성’이 ‘여성’의 공간에 들어온다는 이유였다. 여대라는 ‘금남’의 지대에 자신을 숨기고 은밀히 들어오는 ‘남성’에 대한 공포가 그 위험의 실체였다. ‘트랜스젠더’라는 기표를, 마치 여성을 성적으로 탐닉하고 침범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자격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여자대학은 누군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평등을 지향해 만들어진 의미 있는 공간이다" / 내 친구 박한희 - 김지혜


"미국의 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차별과 불합리를 이기고 대법관이 된 뒤, 그는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 있어야 충분하죠?”라는 질문을 받는다. “9명이 될 때”라고 대답하며, 오랫동안 대법관 9명 모두 남성이었던 것을 지적했다. 모두 여성이 되어야 충분하다는 말이 아니다. 여성들이 편견이나 고정관념의 방해 없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 이미 충분하다는 당신에게 - 홍진아



4. 리뷰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 있어야 충분하죠?라는 질문에 9명이 될 때 답을 들을 때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저 질문에 저는 절반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말이죠. 하지만 이 생각에는 분리와 배제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기계적 평등'일까요.


사회에 있어서 다수자와 소수자의 문제.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1:1이니,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비율도 1:1이 되면 평등이 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구학적으로 어떤 다수자와 소수자가 99:1의 비율이라면, 그 소수자분들이 엘리트층에 1%가 있게 되면 평등한 것이겠죠.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평등은 그런 기계적인 배분이 아니라 '나'와 '너'를 분리하지 않는 것일 겁니다. 여성 대법관이 9명이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세상, 국회의원이 전부 트랜스젠더인 것이 당연한 세상. 대법관이 남성인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돼야 하고, 트랜서 젠더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트랜스 젠더분들에 관한 일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성전환 후 강제전역당한 사건 또한 성전환 후 여대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포기한 사건 등. 적어도 이 일들이 '문제'가 되어서 논란이 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아직 다양한 사회로 나아가기에는 갈 길이 많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인류의 진보는 '우리'의 확장이었습니다. 과거에 국가에서 인간은 왕과 귀족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발전하면서 왕과 귀족에게만 있던 권리는 모든 남성으로 확장되었고, 나아가 모든 여성과 인종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인류의 미래를 긍정합니다. 분명 '우리'는 더 확장될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이 예전과 같은 상호 증오의 과정이 적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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