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사회" "지금 이 순간의 삶" "노력과 쉼"
"각박한 능력주의 사회에서 우리 모두 비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끝도 없는 긴장으로 위축돼 떨곤 한다. 그러나 어쩌면 세상을 잘 살아가는 데 그토록 많은 능력이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자기 존재의 고유한 소중함을 느낄 수만 있어도, 서로의 소중함을 알아만 주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by 잘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나는 그냥 네가 좋아”)
"우리는 인생을 언제 시작할 수 있는가?’ 죽음만 우리의 상상 속에서 유예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인생을 사는 날도 계속 연기되고 있는데, 내가 준비가 안 되었거나 객관적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펠리시의 경우, 죽기 전에 샤를과 재회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날이 올 때까지 자신의 인생은 임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못박아 놓았다"(by 겨울 이야기 )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잘 못하는 것이 멈춤과 휴식이다. '놀면 뭐하니'라는 예능 프로가 있을 정도니 말을 말자. 저자는 '전문가가 되기 위한 1만 시간의 법칙'이 간과한 지점을 말한다. 실제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의 연습 시간이 평균보다 길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보통의 학생들보다 '의도적인 연습'을 했다. 특이한 점은 수면 시간이나 휴식 시간 역시 보통 학생들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속도를 줄이면 더 자세히 볼 수 있지만 경쟁에서는 밀린다. 결국은 적절한 가속과 감속으로 조절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by 일만 하지 않습니다)
"존재 그 자체가 가치가 있다." 맞습니다. 하지만 냉철한 현실 속에서 그 문장은 공허하게 다가옵니다. '능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 제 자신이었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그 강박관념은 쉬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이렇게 쉬어도 되는걸까' 그렇게 하루하루 쉬는 것도, 그렇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삶의 연속.
노력하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바라는 모습을 위해 다가가는 하루하루. 하지만 항상 지금의 저는 미래의 이상적인 저의 모습보다 부족했습니다. 한심한 자신을 생각하니, 계속되는 과거의 제 자신에 대한 후회. '아 좀 더 열심히 살걸' '그때부터 노력할걸' '좀 다르게 해 볼걸' 진정한 삶, 행복한 하루하루는 연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다가 지친 순간에는 그냥 뭐든 부질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이는 어디 없으려나. 스스로도 타인에게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말이죠. 그렇기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추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존재 자체로 보이고 싶기 때문에.
결국 태도가 중요합니다. 사실 지금이 능력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은 없었습니다. 노력은 해야 합니다. 사실 인간은 노력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합니다. 일이 싫은 사람도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 게임, 쇼핑 등 좋아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참 좋아합니다.
위를 보기보다는 밑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부족한 가가 아니라, 얼마나 성장했는 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기준은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면 되었지, 이미 완성된 타인과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하루하루 나아졌고, 노력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굳이 최고가 되고, 1등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충분히 잘하면 그만입니다.
지치는 것은 너무 전력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100m 달리기를 한 것이죠. 또한 혼자 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닙니다. 긴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자라면 할 수 없는 일을,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과 같이 간다면 할 수 있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