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시간을 가로챈 예술가' 남편들
"그는 남편을 돕고 남는 시간을 짜내 그림을 그렸지만, 역시나 재능을 맘껏 불태울 수는 없었다. 반사광은 불꽃을 일으킬 만큼 충분히 뜨겁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남편 돈 쓰는 아내에겐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하다. 반면 아내의 시간을 가로채는 남편에겐 너무나 관대하다. 오히려 아내의 삶과 시간을 많이 착취하는 남편이 더 성공하게 되기에, 가부장 사회는 아내의 헌신을 더 독려하기도 한다." (by. 아내의 시간을 가로챈 예술가 남편들)
우리는 성공을 찬양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뛰어난 재능을 부러워하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던 무수한 노력들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공의 빛에 취해, 이면의 그림자를 보지 못합니다. 어쩌면 성공한 본인들도 말이죠.
한 개인의 성공은 전적으로 그 개인이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설사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말이죠. 성취를 하려면 노력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루는 24시간이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해야 하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돈을 벌고, 밥을 해야 합니다.
수능 대박을 꿈꾸며 공부하는 고3 학생들의 이면에는 돈을 벌고 밥을 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또 그 이면에는 하루하루 일상을 보낼 수 있게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 시스템이 있습니다. 덕분에 고3 학생들은 돈을 버는데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밥을 하는데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당연히 그러지 못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여기에 국가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공부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네. 물론 그럴 능력 자체가 없는 국가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국가의 국민이냐에 따라서, 삶 자체가 달라집니다. 집단은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지만 시간으로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어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과거부터 내려온 우리나라의 '정상가족'은 남자는 일을 하는데 시간을 사용하고, 여자는 육아 등 집안일을 하는데 시간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업무의 분담은 어떤 것이 우월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적인 차원이었습니다. 근력이 더 강한 남자가 농사를 짓고, 아이를 낳는 여자가 육아를 하며 집안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마을공동체에 개인은 살았기 때문입니다.
매년 보릿고개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자기실현은 공허한 이상이었습니다. 설사 벗어나고 싶어도 교통이 발전하지 않고, 치안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마을을 벗어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성별을 떠나서 삶은 고행이었습니다. 이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곧 가족이고 집안이었습니다. 가족과 집안의 발전과 행복은 곧 나의 발전과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안'일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도시화, 근대화, 세계화, 정보화 등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했고, 마침내 개인은 자신의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일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을 넘어 경제적 자유와 자아실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가부장제의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여성보단 남성이 상대적으로 일의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남성보단 여성(어머니, 아내)이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데 시간을 보다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남성(아버지, 남편)은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과거에 여성이 번 시간에 남성이 일을 한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투쟁의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경제적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한 시간입니다. 즉 시대가 변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변해갈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은 과거보다 상호의 시간을 존중하게 되었고, 앞으로 더욱더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