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세상읽기 2020년 15주

대학을 거부한 국회의원을 찾습니다 등 2개

by 지렁이

1. 기사 링크


2. 핵심 대목


"어떤 직장의 직원들 평균 나이가 60살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장 나이 말고 전 직원의 평균 연령 말이다. 심지어 남자 직원의 비율이 80%가 넘는다면? 하필 이 회사가 교육, 부동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4차 산업혁명 속에 미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회사라면? 이 회사를 믿고 당신의 미래를 맡길 수 있나? 세상에 그렇게 편향적인 직원 구성을 가진 회사가 어디 있냐고? 여기 떡하니 있다. 우리 대한민국 국회가 딱 이 꼴이다." (by. 청춘의 록 국회…다선 의원 혁오·장기하, 재야 출신 선우정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자리를 차지하는 이는 변함없이 50대·남성·대졸자이며, 그중 다수는 ‘인서울 주요 대학’ 출신이거나 유학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기득권 집단이 지나치게 과대 대표되어 있는 것이다. 늘 찢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는 게 정치인 줄 알았더니 놀랍도록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 공무원들이 이렇게까지 편중되어 있으니 정책도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 다수에게선 학력·학벌 차별을 없애거나 대학서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by. 대학을 거부한 국회의원을 찾습니다)


3. Review


사회 엘리트 층의 구성은 곧 그 사회를 상징합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집단과 구성원 중에서 어느 쪽이 권력을 잡고 있으며, 그 사회는 무슨 가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조선시대만 생각하면 금방 유추할 수 있는 직관입니다. 성리학을 공부하는 남성 사대부만이 권력을 잡고 상인, 농민, 여성 등은 철저히 배제된 사회였습니다.


물론 엘리트층은 기본적으로 유능합니다. 사실 그들이 선천적으로 유능하다기보다는, 유능할 수 있게 사회적 자원들이 불평등하게 독점적으로 투자가 되어(ex) 공부할 수 있는 환경), 결과론적으로 유능한 것이지만요. 아무튼 그들 중에서도 재능이 뛰어나거나, 노력을 많이 하고, 혹은 집안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엘리트층이 되었을 겁니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론적으로는 유능한 사람이 통치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다양한 가치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이 문제임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제가 외국을 가서 놀랐던 것이 '버스'였습니다. 모든 버스 출입구에 '계단'이 없었습니다.

입구는 휠체어나 유모차가 탈 수 있게 충분히 넓었으며, 기사가 높이를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음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평소에 유모차를 끌 리가 없는 사람들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버스입니다. 이런 경우가 사회 곳곳에 만연하여 발생하게 됩니다.


물론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국가는 잘 성장하였다. '네. 그럴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상인 가치관과 정상인들은 말이죠' 그 과정 속에서 비정상으로 취급받은 다양한 가치관과 사람들은 소외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당당함도 무너지는 때가 옵니다.


사회가 급변할 때입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지식, 성공법칙, 가치관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은 자신이 그렇게 기득권이 되었기에 과거의 것을 고수합니다. 변화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알면서도 자신이 가진 기득권이 무너질까 봐, 혹은 자신의 가치관의 옳음을 확신하고. 그렇게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죠.


4차 산업혁명 시대, 현 국회의 '편향'은 우려스럽습니다. 다양한 가치를 대변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편향은 노력의 유무를 묻는 개인적 측면에 원인이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양한 사람이 최대한 동등한 기회 속에서 경쟁한 것이기보다는, 특정 집단에 유리해지게 시스템이 세팅되어 있고 그 집단 사이에서의 경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국회의 편향을 해결하려면 시스템을 고쳐야 합니다. 문제는 그 시스템을 만드는 이가 바로 국회입니다. 기득권이 자기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선택을 할 리가 없고, 또 문제의식을 느낄 리가 없습니다.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외부에서 오는 충격입니다. 앞으로 도래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과거에는 일정 부분 훌륭하게 기능하였으나, 이제는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현 시스템을 개혁할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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