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세상읽기 2020년 18주

개근상 때문에 아파도 참는 게 과연 성실일까요?

by 지렁이

1. 기사 링크


2. 핵심 대목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 개근상을 받았던 많은 아이들은 사실 쉬고 싶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때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해주기 어려웠던 것 같다. 아픈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돌봄의 여력이 없었기에, 어른들이 바쁜 낮에는 아픈 아이들도 어떻게든 일과 안에 욱여넣어 놓아야 했던 것이다. 운 좋으면 양호실에 누워, 운 나쁘면 책상 위에 엎드려 버틴 아이들을 칭찬과 상으로 달래가며 키우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3. Review


제가 중학교 다닐 때 갑자기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쓰러져서 급히 병원에 가서 입원을 했습니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어서 하루 만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불가피한 경우였지만, 그 하루의 결석으로 저는 개근상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성실함이 '매우' 강조되었습니다. 근대사회에서 학교의 역할 중 하나가 '사회화 기능'입니다. 사회에 나가 성실하게 일할 수 자세를 내면화시키는 것이죠. 학교 개근상도 같은 차원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해진 시간까지 학교(회사)에 나와서, 정해진 시간 동안 공부(일)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하교(퇴근)하게 합니다.


하지만 기사를 보니, 문득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봄의 여력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일과 안에 욱여넣었다' 오늘날 맞벌이 가정이 생각나지 않나요? '돌범의 여력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학원 뺑뺑이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이 능력개발을 위해 학원을 보낸다는 설명도 가능은 하겠지만요.


보육의 문제는 과거부터 있어왔습니다. 갓 태어난 인간은 너무나 무능력하기에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육의 문제는, 보육 주체의 문제입니다. 전통적으로 보육은 가정이 맡아왔습니다. 일하는 아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구도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부부 한쪽의 벌이 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 양쪽 성이 모두 일하는 시대에 들어서자 더 이상 가정에서 보육을 책임지기 어려워졌습니다. 노년에도 손자, 손녀를 돌보는 황혼 육아가 늘어나는 것이 그 반증이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학원 뺑뺑이를 돌리거나, 사립유치원을 보내는 등 '시장'에 맡기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게 국가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입니다. 대가족에서 4인 가족, 이제는 1인 가구, 딩크족 등 더욱더 세분화되고 있는 가족은 과거처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시장은 공공성보다는 효율성의 가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도 보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오게 될 결과는 크게 2가지입니다. 아이를 낳고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죠. 어느 쪽도 국가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말입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든 국가의 역할은 갈수록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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