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세상읽기 2020년 19주

'보고 배울 수 없는 시대'의 교수

by 지렁이

1. 기사 링크



2. 핵심 대목


"U-러닝의 '뉴 노멀'이 벌써부터 대학에 잠식해 든 형식과 양의 관성을 부추기고 정당화할까 우려해서다. 배움의 본질이 망각될까 두려워서다. 책에 다 나와 있을뿐더러 다양한 인터넷 자료를 통해 한층 흥미롭게 제공되는 정보를 재탕하는 것은 무의미하니, 하나의 마스터(원판) 강의, 한 명의 마스터 교수만 있으면 된다는 논리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러 학교가 왜 필요한가? 여러 교수가 왜 필요한가? 실존적인 질문이다. 내게는 비대면 강의 테크닉보다 이 질문이 중요하다. '보는데 보지 못하는' 시대에 '보지 못해도 보는' 강의가 어떻게 가능할까"



3. Review


코로나19의 확산은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중 하나가 교육부문입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면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초등, 중등, 고등, 대학교를 가리지 않고 온라인 수업이 실시된 것이죠. 개학을 하였지만 학생들은 자신의 친구들을, 선생님들을 실제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학기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오프라인 수업'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면 과연 '오프라인 수업'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교육이 '지식 습득'의 목적이었다면, 코로나 19가 끝나더라도 굳이 '오프라인 수업'으로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맞벌이 부부'가 많은 곤란함을 겪었습니다. 부모가 일을 하는 동안, 어린 자식들을 안전하게 맡아 줄 공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건 근대 학교의 역할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가족이라면, 혹은 자식들이 충분히 커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대학생이라면 굳이 오프라인 수업이 필요 없는 것일까요?


교육의 목적이 지식 습득이었다면 그럴 것입니다. 인터넷에 모든 지식이 있으며, 또한 유능한 강사들도 넘칩니다. 어쩌면 학생들은 최선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교수님, 선생님들보다 1타 인강 강사님들이 더 잘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재미가 없거나, 실력이 없으면 순식간에 도태되는 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분들이니까요. 하지만 현 교육시스템 하에서 학생들은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전면 온라인 교육이 시작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죠. 국어 수업을 전국의 모든 국어 선생님들이 각각 온라인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을까요? 학생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하게 강의할 수 있는 소수의 국어 선생님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몇 가지 타입이 영상을 찍어놓는다면 충분할 것입니다. 학생들도 굳이 지루하고, 잘 들어오지도 않는 수업을 억지로 참아가며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교육의 목적이 지식 전달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윗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배우고 느끼고 성장합니다. 물론 왕따와 같은 관계 속에서 오는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관계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야 말로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 교육은 지식 전달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 교육은 입시라는 거대한 늪에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어떻게든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입시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관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타인은 동료보다는 경쟁자가 됩니다. 다른 학생의 성적 향상은 곧 자신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지식 전달일까. 모든 지식이 인터넷에 있는 시대에서 사회에 진출하면 대부분이 의미가 없고, 시험이 끝나면 잊어먹는 지식들. 시험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대학 정원수를 놓고, 모두가 그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으로 지표로써 기능하고 하고 있는 것 아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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