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세상읽기 2020년 20주

대한민국 초저출산, 공정한 노동시장 없이 해결 어렵다

by 지렁이

1. 기사 링크



2. 핵심 대목


"일·가정 양립 정책만으로는 심각한 노동시장 이중화라는 우리 사회 초저출산율의 배후에 있는 뿌리 깊은 사회구조적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 고용 안정, 소득 안정, 나아가 자녀 양육에 필요한 안정적 경제 기반 마련이 이루기 힘든 과제로 인식된다면, 가족 형성과 자녀 계획이라는 장기간 책임이 필요한 일을 회피하게 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노동시장 불안정성에서 비롯되는 당면한 현재의 취약성과 또한 예견된 미래의 취약성은 적절한 사회안전망의 부재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3. Review


정말 하루에도 수많은 광고가 사람들을 스쳐갑니다. 광고들을 보면 도대체 왜 저런 광고를 하고 있을까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적은 돈을 투자하면 많은 수익금을 준다는 메일 광고가 온 경우죠. 그런 메일을 보면 '도대체 이걸 누가 속는다고'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속는 사람이 누군가 있기에 그 메일을 보낸 것일 껍니다.


광고는 어떤 사람을 목표로 하는 것일까요? 우선 광고를 하든, 하지 않든 제품을 살 사람은 대상이 아닙니다. 또한 광고를 하든, 하지 않든 제품을 사지 않을 사람도 대상이 아닙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광고를 보고, 제품을 살 것 같은 사람이 광고의 목표이죠.


사족이 길었는데, 출산도 마찬가지 차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1. 무조건 출산을 할 사람 2. 조건이 된다면 출산을 할 사람 3. 무조건 출산을 하지 않을 사람. 국가적으로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정책의 타깃팅은 두 번째일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저출산은 무슨 조건이 안 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많은 돈을 벌고 싶습니다. 하지만 많은 돈을 주는 곳은 제한적입니다. 소수의 대기업에 한정됩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돈을 주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대기업을 제외하면 중소기업이 해당됩니다. 기업을 극도로 일반화하여, 오로지 세상에 대기업과 중소기업만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기업에 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대기업에 갈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볼 때 대기업에 가려면 상위권 대학을 가야 합니다. 살다 보니 상위권 대학에 있는 것이 유리하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 것일 수 있고, 혹은 실제로는 아니지만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입시지옥이 펼쳐집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자식이 향후 성인이 돼서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상위권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한 투자가 이뤄집니다. 문제는 상위권 대학은 정원수는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시키면 되었으나, 점차 모두가 그렇게 함에 따라 중학교 때부터 시작합니다. 당연히 나중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유치원 때부터로 넘어갑니다. 다녀야 할 학원 수도 갈수록 많아지죠.


전형적인 안보딜레마입니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안보딜레마란 '한 국가의 군비증강이 의도치 않게 인근 국가의 안보불안을 초래하여 인근 국가 역시 군비증강으로 대응해 군비경쟁이 도래하게 된다'입니다. 다른 다라가 군비로 100달러를 쓰면, 자신은 불안하니 110달러를 쓰고, 이에 대응하여 상대국은 120달러를 쓰며, 다시 자신은 거기보다 더 돈을 많이 쓰고.. 이게 무한히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경쟁의 끝에 살아남은 애들이 대기업에 갑니다. 대기업 공채에서 보는 인적성 시험은 본질적으로 수능과 비슷합니다. 수능시험을 잘 치는 학생들은 당연히 시험을 잘 치는 능력이 우수하기에 인적성 시험을 확률적으로 잘 칠 수 있습니다. 대기업 수시채용에서 보는 각종 능력들은 부유한 계층에서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 확률적으로 유리합니다.


즉 상위권 대학 학생들이 대기업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지만, 본질적으로 입시 이전에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는 학생들이 곧 대기업이 갈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그렇게 사회에 진출한 학생들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을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적으로 무엇이 더 삶에 유리한지 경험했기에, 다시 자식들에게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겪어왔던 길을 다시 겪게 하게 됩니다.


결국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치킨게임이 되는 교육투자 속에서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입니다. 당연히 여러 명의 아이를 낳기 힘듭니다. 또한 자식에 대한 교육투자를 넘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커지고, 그렇다고 복지가 잘 이루어지지도 않는 현실 속에서 자식을 낳아 키울 여유 자체가 안됩니다.


해결책은 분명합니다. 입시와 취업의 연관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또한 청년층들에게 출산을 선택할 여유가 생겨야 합니다. 그들에게 충분한 소득이 있어야 하고, 같이 살 수 있는 집을 부담 없이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그 소득이 출산을 한다고 끊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의 고리만 해결한다고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모든 고리를 동시다발적으로 고쳐 새로운 순환을 만들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사실상 혁명과 다름없는 난이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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