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에서 친구 만나는 즐거움#1 - 환경재단 박문진
[카오산 로드]
람푸하우스(Lamphu House) → 쪽 포차나(Jok Phochana) → 마담 무슈(Madame Musur) → 람푸하우스(Lamphu House)
박문진. 나는 그녀를 “문쌤‘이라 부른다. 내 32년 인생보다 아주 살짝 더 세상을 먼저 경험한 그녀에게 ’누나‘라는 칭호를 붙여야 마땅하다. 허나 이미 문진씨~, 주영씨~로 부른지 1년 정도 흘렀기에, 또 향후 협업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에 그냥 내 멋대로 문진씨→문쌤으로 새 호칭을 바꿔 부르고 있다.
문쌤은 개발도상국 환경개발 전문가다. 학부 졸업 후 캄보디아 오지에서 소속 없이 1년 여간 NGO 활동을 했다는데 아마 그때의 경험이 그 후의 인생을 견인하고 있는 것 같다. 동남아시아를 사랑하는 그녀는 일 년에도 수차례 방글라데시,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등지를 두루 돌며 마을 지역 태양광사업을 위한 현지답사 및 평가 등의 환경재단의 아시아지역 사업을 도맡고 있다. 설익은 내 눈에는 이~삼십 대 가운데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아시아 개발 전문가 탑 텐(Top 10) 안에 들지 않나 싶다.
이번 태국 방문도 그녀의 해외출장 귀국 전날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 저녁시간을 같이 보낸 것이 전부다. 짧은 시간이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군데군데에서 이런 식으로 문쌤과 조우할 가능성은 높다. 우리 사이에 ‘환경개발’의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한은 말이다.
이미 그녀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아시아 관광객들의 집합소로 유명한 곳)를 5회째 방문한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아직 태국 온지 2주차밖에 안된 내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손님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명색이 ‘방콕 주민’으로 불리고 있는데, 자존심을 발휘하여 자존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내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카오산의 신선인 마냥 모든 것을 꿰뚫어놓고 있어야 한다. 동선 짜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오후 2~3시에 카오산 람푸하우스(Lamphu House)에 체크인 예정인 문쌤을 만나기로 한 시각은 7시. 그녀가 머무는 숙소는 시끌벅적한 카오산로드에서 살짝 벗어난 람부뜨리(Rambutri)의 한적한 골목 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찾아가 문쌤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아까 해 쨍쨍할 때 싸판카오 청과시장에서 구입한 망고스틴 한 봉다리 건넸다. 물론 문쌤은 배불러서 먹지 못했다. 이건 내 호의가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 손님에 대한 내 준비가 미숙하여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의전에 실패한 것이다.
문쌤과 이별하기 전에 그녀가 건넨 라오스에서 구입한 코끼리 무늬 가방을 받으며, “차라리 기념으로 유엔 벳지를 드릴걸”이라고 후회 어린 상상을 해본다. 아뿔싸. 아니다. 더 큰 자책을 할 뻔했다.
문쌤은 좋은 사람이다. 단지 이 먼 이국땅까지 와서 ‘무급인턴’인 내게 맛있는 밥과 달달한 칵테일 그리고 망고와 쫀득한 찹쌀로 이루어진 주전부리를 모두 사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옅은 저녁,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금 느꼈지만, 그녀는 내게 환경개발에 있어 살아 숨 쉬는 영감을 불어 일으키는 좋은 선배다.
2014년 자원봉사 Staff로 참석한 환경재단의 ‘피스 앤 그린보트’ 행사를 통해 알게 된 문쌤을 알게 된 후부터 늘 그렇게 생각했다. 국내에서 환경 관련 종사자들은 다 알만 한 환경 NGO 단체인 ‘환경재단’ 직원답게 제주도-대만-일본을 항해하면서 전두 지휘하는 문쌤의 활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역시 사석에서의 만남은 다르다. 이번 카오산에서 문쌤이 들려주는 개발도상국 현지 경험담은 마치 눈으로 좇지 않아도 편안히 몸을 뒤로 젖혀 귀로만으로 듣는 소설과도 같았다. 평소 바쁜 업무에 매여 있을 때는 나눌 수 없는 이야기, 이런 거 아주 좋다. 그래서 여행에서는 대화의 폭이 지평선처럼 넓게 펼쳐 진다. 우리가 느긋하게 퍼져 누워 있던 와상이 마련된 한적한 마담 무슈(Madame Musur)와 같은 레스토랑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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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대화에서는 ‘문쌤’을 포함해 유엔 유네스코 정직원 1명과 코이카 해외지부에서 근무하는 부소장 2명 등 기라성 같은 국제개발 전문가들의 또래 절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난 아직 인턴 나부랭이인데, 향후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싶은 내가 문쌤 친구들 얘기가 부럽지 않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동기부여? 자극제가 되었던 것은, 그 친구들이 이집트에서 했다는 스킨 스쿠버 다이빙 사진 한 장이다.
학부 때 해양생물 실험실에서 졸업논문을 작성한 경험이 있는 만큼 바다를 향한 큰 애착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번 태국에서의 인턴기간 동안 스킨 스쿠버 자격증을 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 그 꿈을 실천하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문쌤이 보여준 사진 한 장이 내 가슴에 불을 질렀다. 내 꿈이 현실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나도 이들처럼 해저 한 가운데서 똥개처럼 실없이 쳐 웃고 있는 듀공님을 만나 뵙고 싶다. 이번 문쌤과의 만남에서 가장 큰 수확은 바로 ‘듀공님 알현 성사하기’라는 목표를 갖게 된 것이다.
내 인생이 지금껏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갈구하던 목표가 나침반을 잃어버리고 표류해버린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다. 이런 새로운 흥밋거리가 나를 살랑살랑 유혹하는 것을 그냥 온몸으로 받아 드리련다.
장소가 이집트란다. 태국에서 이집트를 꿈꾼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큰 틀은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예비하신 대로 흘러갈 테니깐, 취미만큼이라도 여기저기 좀 기웃거리면서 다채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 가까운 미래에 이집트에 듀공님 알현하러 가리라.
나에게 듀공의 꿈을 선사한 문쌤과는 작년 그 행사 이후로도 두 차례 정도 환경 관련 외부 세미나에서 조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함박웃음‘으로 날 반겨줬던 문쌤은 앞으로도 지구촌 어디에서 만나든 계속 그리해줄 것이다. 난 내게 환하게 웃어주는 사람을 “악” 물 수 없다. 보통 정상적인 동물이 주인을 물지 않는 것처럼. 실실거리는 듀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