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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영 Feb 01. 2016

브런치 제6화 / 사회 초년생들의 태국여행기

SK 오 대리와 초딩교사 정 선생 편

아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봐주세요. 

브런치는 사진 편집한 것을 붙여 넣는데 용이하지 않네요.



사와디 캅.

그간 정들었던 태국을 떠나 장화 모양의 이태리 땅을 밟게 되기까지 약 한 달 간의 시간이 흘렀다. 모두가 부럽다 말하는 유럽이고 그 가운데 사진 찍는 곳마다 화보가 된다는 이탈리아다. 그럼에도 이곳에서조차 태국 특유의 그 느긋하고 여유로웠던 삶의 잔상을 지우지 못한 채 있다. 태국은 내 심장에 둥지를 튼 또 다른 안식처다.


"대한항공 가족 마일리지 합산 제도"를 이용하여 이태리행 왕복 티켓을 끊었다. 최종 목적지인 베니스 직항은 마일리지 결제자가 선택할 수 없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이다. 아쉬움을 머금고 가장 가까운 밀라노까지 날아간다. 


산림청(녹색사업단) 유엔 인턴 지원금 월 100만 원으로 모자람 없이 살던 태국에서, 오로지 개인 통장 잔액에 의지한 채 떠났다. 그것도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비싸다고 소문난 베니스가 최종 도착지. 풍요로움에서 빈곤을 향하는 그 여정의 좌석은 33년간 변함없이 "이코노미"다. 한결같아서 좋다.


덕분에 거대한 블랙야크 백팩과 두 캐리어를 양 손으로 끌면서 밀라노에서 베니스까지 천로역정을 시작했다. 고교 시절부터 몸무게 만한 짐을 짊어지고 대륙 간 이동을 반복한 것이 또래에 비해 적지 않다. 헌데 슬슬 적응했을 법한데 여전히 고되다. 아니, 예전보다 힘들어졌다. 허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 다 쑤셔온다. 태국에서 애용했던 시간당 3000원짜리 전통 마사지가 문득 뇌리를 스친다. 기-승-전-태국이다.


몇 살까지 백패커의 신념과 지갑으로 해외를 유랑할 수 있을까. 이제 남들처럼 자금을 비축하여 몸을 혹사시키지 않은 방향으로 선회해도 좋으려만. 33살 먹은 이 쪼그마한 놈은 주변 지인들은 이미 정착-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반해 여전히 "세상아 덤벼라~"라고 객기만 부리고 앉아있다. 한결같아서 좋을까? 나도 때론 걱정된다. 그래도 어쩌겠나.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고 가진 것은 없으니 몸뚱이라도 열심히 놀리는 수밖에. 


이와 같은 현실은 SK에 근무 중인 오 대리나, 초딩교사인 정 선생에게도 매한가지다. 여행 기간 이런저런 얘기를 통해 이들  가슴속의 무언가 식지 않은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헌데 그 열정을 불사르기까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만만치가 않다. 직장, 가족, 여자친구, 커리어 그리고 그 사안별로 고민거리가 줄지어 꼬리를 물고 있다. 마치 아메바처럼 끊임없이 분화해간다. 차라리 그냥 꿈을 접는 것이 나을 수도.. (인생선배 독자님들은 이런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건장한 두 청년.

오헌영(대리)과 정영철(교사)은 내 공군 장교 동기다. 타 지역에서 전혀 다른 특기로 근무했지만 가끔씩 연락하고 만나기도 했던 그런 동기들. 그 인연을 태국에까지 끌고 갔다. 예전의 익숙함이 있기에 더 큰 행보를 같이 할 수 있다. 물론 3명이 한 번에 모인 적은 처음이다. 다들 쿨한 성격의 소유자라 믿었기에 새로운 조합을 시도했다. 조금씩 서로 양보해가며 여행하기로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결정했다.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하지 않으며, 삶의 과정을 드러낸다. 20대서 30대로 넘어가는 사람들은 자기주장을 굽히는 법을 초창기 사회생활을 통해 익히게 된다. 따라서 30대가 되어서도 꿋꿋이 본인 생각만 강요한다면 철이 덜든 사람이라 칭한다, 반면 대학 신입생과 같이 햇병아리임에도 이상하리 만치 사려 깊은 후배도 마주한다.  철든 사람이다. 


우리에 대해선 이번 여행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됐다. 아직 미숙하다. 헌데 분명 성숙하기도 했다. 20대 초창기의 우당탕쾅탕 요란했던 그 시절의 여행보단 한층 발전된 매너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서로가 편했다.





태국과 정말 잘 어울리는 비주얼들.

영철이(왼쪽)는 외모가 일단 기본 군사훈련 때도 익히 알려진 동남아 계열이다. 잠깐 잊고 있던 고향을 이제야 찾아 돌아온 탕아 같은 느낌. 무엇보다 외출할 때 늘 짊어졌던 우쿨렐레는 영철이의 분신이었다. 그리고 영철이는 집시(gipsy)처럼 변해갔다.

헌영이는 진짜 동남아 출신이다. 그동안 포르투갈과 미국에서만 공부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베트남 제 2의 도시인 호찌민시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래. 네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긴 했었어. 그런데 정말 이 동네 출신일 줄은.... 허허. 


여행자 거리, 카오산로드 근처를 걸어본다. 길거리 현지인과 이질감이 전혀 없는 우리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동남아 여행은 딱 우리에게 맞는 옷이었다.



여러 번 포스팅에서 언급했다. 난 클럽을 좋아하지 않는다. 알코올 마시는 데에 취미가 없고, 춤도 흥도 그다지 없다(그런  척할 때도 있지만). 현실 속 쭈구리는 클럽이라는 공간에서 움츠러든 작은 돌멩이로 변환된다. 발에 치이기 십상이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나. 현지인들과 터놓고 어울리기 좋은, 좀 더 포장해서 로컬 문화교류의 장으로 클럽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그래서 두 동생에게 미안했다. 헌영이와 영철이의 부푼 기대를 별 볼일 없는 가이드(=나)가 충족시켰을 리는 천부당만부당. 그냥 우리끼리 좋은 추억을 쌓았다는 것에 의의를 갖는 걸로. - 헌영이의 쪼리로 출입 저지당함 - 신발 돌려 신기로 겨우 입성 - Big 재미 줘서 고맙다. 






파타야에 가까운 코란 섬으로 넘어갔다.

개인적으로 사무실 출근과 병행하며 동생들과 어울리는 게 쉽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귀국을 일주일 앞둔 시기다 보니 마지막 결과보고서다 행정처리다 해서 잡무가 다소 있었다. 하지만 태국에서 와서 바다를 안 간다면 비행기 삯을 허투루 소비한 것이다. 그 정도로 이곳 해양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에메랄드 물빛을 가르는 해상 스포츠(제트스키 등)는 여행객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한다.  


하루 이틀 우리 세 명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돈독해졌다. 결국 나까지 합류해서 세 명이서 코란 섬을 같이 즐겼다. 시공간을 공유했다. 내게 헌영이 영철이와의 여행은 귀국 일주일 전의 정금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때론  바보짓도 서슴지 않는 형을 존중해주고, 같이 더 바보가 되어준 동생들의 배려에 감사하다.





여행의 시작이 있고 난 후,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끝이다. 난 이들이 파타야에서 1박을 할 때, 홀로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방콕으로 돌아왔다. 두 동생끼리 오붓하게 파타야에서 시간을 보냈다. 후기를 들어보니  어처구니없게도 피곤에 절어 그냥 숙소에서 쉬었다고 한다. 허허.. 파타야까지 가서 숨만 쉬고 뒹굴거리고 오다니, 싸다구를 후려쳐주고 싶었다. 촤착촤착~





방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콕 최대의 거리 시장인 짜뚜짝 시장과 맛집 탐방에 나섰다.  그동안 본인들이 얼마나 호갱짓을 하고 다녔는지 깨닫는 모습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런데 허허허 웃으며 쿨하게 넘긴다. 호갱짓도 동남아 여행을 즐겁게 하는, 비록 씁쓸하긴 하지만, 일부 요소라고 자위하는 두 동생들. 진짜 어른이다. 





이렇게 방콕의 내 방에서 하루를 더 묵고 헌영이는 먼저 귀국했다. 회사원 신분으로 지금껏 시간을 할애한 것도 대단하다고 박수 쳤다. 방콕에서는 지극히 후리한 (심하게 말하면 거지 같은)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더니 (실제로 입던 옷을 방콕에 헌납하고 떠났다), 귀국 전엔 SK 회사원 느낌으로 멋지게 빼입었다. 댄디했다. 헌영이는 그냥 평범한 대한남아라 생각했는데, 얼굴과 자태가 고아 보였다. 역시 서울남자다. 남자를 완성시키는 것은 패션이라던 선전문구가 확실히 이해됐다. 


여성 분들, 혹시나 내 남자가 잘생'김'을 소유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계급장 떼고, 옷발 떼고, 머릿발 뗀 목욕탕에서 검증하시길. 아! 일본 혼욕탕, 독일의 공용 사우나를 이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구나, 이런이런.




(엉덩이가 톡 튀어나온 섹시한 헌영이의 전과 후)


이제 남은 것은 영철이. 초등학교 교사의 방학은 그들 삶을 더욱 부유케 한다.

우리가 향한 곳은 태국에서도 손꼽히는 여행지인 '칸차나부리'였다. 영철이는 틈만 나면 우쿨렐레 현을 튕겼다.. 여행 목표 중 하나가 음악과 함께하는 여행이란다. 영철이의 그 소원과 내 취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칸차나부리에서 우리끼리 연주하며  희희낙락하기로 결정.





여행을 할 때 자신만의 테마, 철학, 목표가 있으면 좋다. 그것이 박물관이든, 현지 사람(동성/이성)과의 교류든, 맛집이든 상관없다. 아무 생각 없이 여행에 임하면 아무 생각 없던 그 추억은 사장되고 만다. 물론 가끔은 생각 없이 여행하는 것도 괜찮다는 조언을 듣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조언 이면에는 "내려놓기"라는 철학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친구들따라 단순히 맹하게 돌아다니지는 마시길. 우리의 인생은 무의미하게 보내기엔 너무나도 가치 있다.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칸차나부리에서 시속 3~40킬로 나가는 오토바이를 렌트하게 됐다. 앞으로 렌트 전 시운전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추가되었다. 이런 허접한 속도의 오토바이는 처음 봤다. 덕분에 느림의 미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난, 느리게 움직일 것을 강요당했다. 


느렸기에 새롭게 다가온 무언가는 없냐고? 개뿔, 전혀 없다. 


오히려 목적지인 에라완 폭포에 남들보다 늦게 도착했고, 남들보다 일찍 나와야 했다. 1시간이면 도착했을 거리에 2시간 반을 쏟아부었고, 쌩쌩 달리는 차들 가운데 부들부들 떨며 핸들을 움켜쥐었다. 급속히 소진되어가는 연료 계기판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고, 오르막길에서 영철이는 달리기 선수로 변신했다. 느려서 피해를 봤다. 거침없이 뻥뚤린 도로에서 천천히 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우리 2~30대가 살아가는 사회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다. 외면적으로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듯 하지만 막상 실상은 각자 출발선상도 다르고 동력원도 다르다. 뒤쳐지면 낙오한다. 이런 얘기가 SNS나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그래. 낙오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천히 가면 되고 자연인으로 거듭나면 된다. 하지만 물질세계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이 악물고 속도를 내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현상은 세계 공통이다. 실제로 본인이 거주(중인)했던 북미(미국), 동북(일본), 동남(태국), 유럽(이태리) 어디든 공통된 현상이다. 그러니 이 현실에 불만을 토로할지언정 부정까진 하지 말자.


칸차나부리에서 Jolly frog 숙소까지 몇 번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무사히 도착했다.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돌아올 수 있었고, 안도의 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순응해야 하는 현실을 매일 마주하고 있는 우리 세명. 그런데 아직  가슴속 열정이 남아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태국여행에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잊고 있던 본능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것뿐. 


일단 길을 떠났다면 꼭 살아 돌아오기. 그러니 살아서 돌아오자. 만약 길을 떠났다면 말이다.

그리고 같이 가자.



P.S

다음 여행지는 헌영이의 고향인 베트남 호찌민시티로 (본인이 맹그로브 숲을 연구했던 곳이기도 함)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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