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쿤 여행기

by 심바빠

뒤늦은 업데이트.


#1


우리가 치첸이트사를 방문한 날은 마침 마야의 비의 신이 아즈텍의 태양신에게 자리를 내어주던 참이었다. 그곳엔 인간신도 있었다. 가장 명예로운 전사의 심장이 독수리와 재규어 재단에 올라가며 신이 되었다. 명예를 다투고, 승자를 기리며, 신을 경배하던 그 모든 순간에 숭고함이 조각되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노래와 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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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칸쿤 시내의 팔라파스 공원.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조나 호텔리아‘와는 달리 현지인들의 먹거리를 파는 곳이 모여있다. 마침 크리스마스 경인지라 멕시코인들의 연말 풍습인 포사다 Las Posadas 를 볼 수 있다. 공원에 딱 하나 있는 카페, 그 곳의 주인장 애니와 부루노는 열댓명의 주민들과 함께 무대를 꾸민다. 매우 뛰어난 가수인 부루노는 우리 식으로 하면 발라드와 트로트, 블루스가 묘하게 섞인 멕시코 노래들을 부르며 분위기를 왁자지껄하게 띄운다. 열댓 중에 서너명이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전시한다. 이들은 모두 마에스트로로 불린다.


경건과 엄숙과는 거리가 먼 이 포사다에도 신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태양, 비 그리고 독수리와 재규어가 아니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다. 이들의 가장 명예로운 전사는 성 베드로. 마이크를 잡은 지역 어른은 이 위대한 전사가 로마에서 어떻게 악마를 쫓아내었고, 그것이 어떻게 피냐타 Pinatas 를 때리는 풍습으로 연결되는지를 공들여 설명한다. 이 행사의 명예는 피냐따를 부숴낸 사람에게 돌아가지만, 모두 함께 터진 박에서 나온 과자들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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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 년의 시간이 너무도 비슷하고 또 너무나 이질적인 두 풍경을 가로지른다. 전의 것은 후에 오는 것에게 뿌리를 뽑혔다. 코르테스가 몬테주마를, 콩키스타도르가 재규어 전사들을, 성모 마리아가 태양신을 들어냈다. 피는 잔혹하게 흘렀고, 그만큼이나 섞였다. 정글 속에 숨지 못한 사원들과 마을들은 무참히 파괴되었다. 대륙의 금은은 바다 너머의 다른 왕궁으로 옮겨졌다.


그런데도 이 두 풍경을 얽는 선율에는 단절보다 연속이 강렬하게 변주되었다. 과거에 사람들을 하나로 묶던 돌로 세운 거대한 제단과 광장은 부숴졌는데, 그들이 사는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도 광장 plaza이 있다. 자리한 신들과 언어는 바뀌었지만, 그 기림의 풍속에서 예전의 제사의식과, 노래와, 명예로움이 읽힌다. 무엇보다 한 명 한 명의 사람 자체와, 그들을 잇는 방식. 사랑의 원이 좀 더 넓게, 나로부터 우리를 포괄하게 그려진다. 알 아모르 al amor. 카페 주인장 부루노는 나에게 “This is Mexico!” 라고 말했다.


#4


직업이 병인지, 아니면 우리네 역사의 궤적과 비슷한 포물선을 그리기 때문인지. 고목을 뿌리 채 뽑아내어도 고고하게 자신을 이어온 유카탄 반도의 물줄기가 여행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치 지상의 물을 동굴 속으로 여과하며 은은하고 깨끗하게 흘러온 세노테 cenote 처럼, 멕시코인들도 자신 외부로부터 오는 왜곡을 공들여 풀어나갔던 걸까.


하지만 어떻게? 내 현재로는 닿기 너무도 어려운 문제라며 칭얼대자, 여행을 함께 한 여자친구가 자신이 본 치첸이트사의 풍경을 담담히 들려준다. 그곳에서는 “제단이 광장이고, 광장이 시장이었다” 라고. 그랬다. 하늘을 향해 솟은 피라미드 뒤에는 정사를 토론했을 궁전 터가, 그리고 그 옆에는 물건과 음식을 사고 팔았을 장터가 들어서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을 얽는 가장 중요한 이 세 가지 방식들은 각기 그 안에 서로를 온존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 중 하나가, 혹은 두 개가 들려나가도 남은 하나를 통해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전하는지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끈이 어떻게든 이어진다면, 겨우 살아남은 무엇이 나머지를 복원해낼 수 있는지도.


기회가 닿는다면, 이 이어짐에 대해 조금 더 긴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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