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점: 램지어 위안부-성노예 논문

by 심바빠

1. 일단 제목이 틀렸다. 제목은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 한국어로 하면 '태평양 전쟁에서의 성 계약 건에 관하여'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이 논문의 대부분은 전쟁 이전의, 심지어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던 만주사변 이전의 위안부-성노예 계약과 모집을 다루고 있다.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의 그나마 정상적인 계약 관계를 끌어와 태평양 전쟁 시기 위안부-성노예 강제 징집을 묻으려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만약 이 글이 정말 제목대로 쓰였다면, 저자가 의도한 논지를 전개하는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다.


2. 이 논문은 윤락업자와 젊은 여성의 상호 간 자유로운 ‘계약’ 상황이라는 강한 전제를 깔고 있다. 여기서 이미 당시 정치적/역사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논문 내에서도 그나마 저 전제가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상대적으로 윤락업이 제도화 되어있던 일본 위안부 사례들인데 심지어 이들조차 태평양 전쟁 당시 사례들은 아니다. 군부가 개입하면서 위안부-성노예 모집이 훨씬 강제성을 띠던 태평양 전쟁 시기, 심지어 일본 본토가 아닌 식민지에서의 모집이 과연 ‘계약’의 문제로 설명될 수 있는가. 태평양 전쟁 당시 위안부-성노예 사례를 굳이 계약관계로 설명하고자 한다면, 강압과 물리력(coercion)이 작동하는 상태에서의 계약 (예를 들면, 국제 관계에서 휴전/종전 조약) 이 어울리지 자유로운 경제활동 상태로 상정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3. 한국에서의 위안부-성노예 모집 건에 관한 저자의 논리는 빈약하기 못해 황당한 수준이다. 일부 윤락업자들이 공장이나 식당 일자리를 주선한다며 한국 여성들을 속여 모집한 사례를 제시한 뒤 (p.5), 갑자기 저자가 선언을 한다. 이러한 사기 행각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선 총독부나 일본 정부가 여성을 강제로 징집했다고 볼 수 없으며,” “일본 군부가 이런 사기 윤락업자들과 협력했다고 볼 수 없으며,” “업자들이 여성들을 군대로 데려갔다고 볼 수 없다”고 그냥 말 그대로 선언을 한다. 이 선언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저 단일 사례는 (반)강제 징집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왜 아닌지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논문이라면 말이다. 저 사기 모집의 시기는 ‘1930년대 후반’이라고 나와있는데, 충분히 강제성이, 심지어 그 이전 시기에 아예 없었다고 하더라도, 생기기 시작할 수 있었던 시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최악의 시기는 아니었다. 당연히 태평양 전쟁 (1941년) 이 벌어진 뒤 위안부-성노예 강제 징집이 없었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읽고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


4. 7페이지 정도 되는 논문에서 약 1페이지 정도 마침내 태평양 전쟁 당시 사례가 등장하는데, 논문 전반부에서 제시한 계약 프레임에 따라 이 시기에 어떻게 위안부-성노예가 모집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없다. 위안부-성노예가 성병과 강간 방지의 목적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단락 하나로 시작해,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일은 얼마 동안 했으며, 그 돈은 여성들이 가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서술한다. 돈을 받을 수 있었고 계약 이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논지인데, 기존 연구들을 토대로 한 종합적 판단이 아니라 단일 사례에 의한 일방적 주장이다. 역사학 저널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런 논지 전개를 그냥 통과시킨다고?


5. 하이라이트는 일본군의 수탈이 가장 극심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시기 – 태평양 전쟁 말기 – 에 일본 군부가 위안부-성노예 사업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논지는 젊은 남성들이 모두 군인으로 동원되어 노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위안부-성노예가 아니라 군수산업에 배치하고자 했다는 거다. 이 주장에는 남성들 징집/징용이 증가했다는 것 외에는 어떤 근거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전쟁 말기 위안부-성노예 모집 숫자가 줄었다거나, 기존 위안부-성노예로 있던 여성들이 군수 산업으로 옮겼다거나 하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서술되어 있지 않다. 당연히 군 복무 남성 숫자가 늘어나면서 ‘성병과 강간을 방지하기 위해(!)’ 더 많은 위안부-성노예를 모집했을 거라는 간단한 반론조차 고려했을 리 없다.


6. 무슨 목적이 없었다면 쓰여지기 힘든 글인데, 만약 순수하게 학술적인 의미로 이런 글을 썼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참 믿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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