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국가 탄생에 대한 연구 맛보기 - 4) 한계

by 심바빠

1) 관점 2) 구성 3) 원인 4) 한계


앞서 살펴보았듯, 20세기 국가 건설의 주요한 방식은 독립이었다. 독립 유형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국가 탄생의 과정에서 이미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17-18세기의 유럽에서의 근대 국가 출현과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자강의 방식에 따라 국가라는 개체를 스스로 만들 수 있었던 유럽의 환경과는 달리, 20세기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에서는 제국들이 이미 그들의 근대 국가 모형을 이식해주고 있었다. 따라서, 20세기 독립 국가 출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어떻게 기존의 국가들이 새로운 국가들의 등장을 허용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춰왔다. 즉, 20세기 국가 출현 - 독립 - 을 설명하는 주요한 방식은 바로 하향식이었다. 어떻게 제국, 그리고 국제 수준의 원인들이 독립국가들의 출현에 영향을 주었나 하는 것이다.


물론 하향식 이론들은 20세기 국가 출현을 상당 부분 설명한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부터는 몇 가지 한계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1) 타이밍


만약 제국과 국제 차원에 존재하는 원인들이 20세기 국가 출현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면, 식민지들의 독립 시기들은 일정해야 한다. 예컨대, 국제적 차원에서 제국주의 시대가 종결되고, 민족자결주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독립국가 출현의 원인이라면 그 시대가 바뀌는 시점에 맞춰 식민지들의 대부분은 일시에 독립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국제적 차원에 존재하는 다른 원인들 - 예컨대,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은 제국주의에 의한 직접적 지배보다는 독립국가들에게 간접적 영향력을 끼치는 편을 선호했다는 점 - 역시 마찬가지다. 제국적 차원에서의 요인들은 역시 제국의 식민지 해방 (release) 절차가 같은 시기에 벌어졌을 것임을 시사한다. 영국과 프랑스, 포르투갈의 식민지 해방 시기에 차이가 있을 지언정, 같은 제국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같은 시기에 독립될 것이다. 제국적 차원에서는 최소한 이러한 원인들이 포괄적으로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는 어땠을까? 참고도 1과 2는 위에 제시한 하향적 설명과 실제 역사의 진행이 상당 부분 배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참고도 1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국가의 연도별 출현의 숫자를 나타낸다. 언뜻 보아도, 국가들은 일시에 출현했다고 보기에 어렵다. 물론 1960년과 1975년을 위주로 많은 국가들이 한꺼번에 태어난 것은 어느 정도 국제적/제국적 설명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1960년은 UN 차원에서의 탈식민화 (Decolonization) 선언이 있었던 해로, 이 때 많은 숫자의 독립국가가 출현했다. 1975년은 포르투갈에서 카네이션 혁명 이후 군부 독재정권이 물러나면서 대대적인 식민지 독립이 이루어진 해다. 하지만 이 두 시기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독립국가의 출현은 시기적으로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도 2는 과거 영국 식민지들이 독립한 사례들만을 모아놓았다. 역시, 과거 영국령이었던 식민지들도 일시에 독립한 것이 아니라 20세기 전체에 걸쳐 꾸준하게 새로운 국가로 등장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향은 국제적/제국적 차원에서의 설명이 상당 부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Independence by year.png 참고도 1: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국가 발생수 (연도별)



Britain_independence.png 참고도 2: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국가 발생수 (연도별- 영국)


(2) 이론적 한계


국제적/제국적 차원의 설명들을 이론의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한계가 발견된다. 앞서 2장의 두번째 글에서 국가는 세 개의 A: Agent, Administration, Acknowledgement로 구성될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도 3 참조) 즉, 국가는 국가 건설 세력(agent)이 일정한 행정 조직 및 행정 능력(administration)을 토대로 국내외의 승인(acknowledgement)을 받으면서 태어난다. 물론,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행정 조직 및 능력이 필요하며, 국가의 출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절차 역시 필수적이다. 행정 조직 및 능력과 국제적 승인이라는 두 측면에서 볼 때, 제국적/국제적 요인들의 역할은 가히 핵심적이었다. 20세기에 출현하는 국가들의 경우, 기존 제국들의 정치/경제/사회적 제도를 대부분 이식받았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2차 대전 이후 독립국가를 승인하는 새로운 세력구도와 규범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administration과 acknowledgement의 차원에서는, 제국적/국제적 설명은 확실한 설득력이 있다.


Components of state.png 참고도 3: 국가의 구성요소


그러나 하향식 설명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agent, 즉 국가 건설 세력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행정 조직 및 행정력이 강화되고, 국제법 및 제도가 바뀌어도 국가 건설 세력의 등장이 없다면 새로운 국가가 나타나는 것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국가 건설 세력이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실제로 기존 식민지의 행정 조직과 행정력을 물려받을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이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국가 건설 세력의 여건들은 각 제국 별, 식민지 별, 나아가 세부 지역 별로 천차만별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 이후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베트남 등의 국가 건설 세력의 조건은 천차만별이었다. 중국, 한국과 베트남의 경우 일본의 식민지 정권과 적대적이던 독립 운동권이 주요 국가 건설 세력으로 떠올랐고, 인도네시아와 미얀마의 경우는 군부가 일본 점령 세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양받는 형태였다.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 역시 서부, 중부, 동부의 식민지의 정치경제적 발전 여건이 극명한 차이를 보였고, 이에 따라 일괄적인 제국적 차원의 정책 적용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피어스는 "Turning point in Africa (1982)"에서, "영국의 전후 식민지 정책은 각 식민지의 특수적 여건에 의해 지배당하고 말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3) 함의


이렇듯, 20세기의 독립국가 출현을 설명하는 하향식 설명들은 경험적/이론적 한계를 노출한다. 이 두 한계점을 종합하면, 20세기 독립국가의 발생은 지역적 특수성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제국에 속해있던 식민지들은 각기 다른 정치/경제/사회적 여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지역적 특수성은 무엇보다 국가 건설 세력이 언제 어떻게 등장하며, 이들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국가를 건설해나가는지에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우리가 지금 바라보게 되는 것이 바로 20세기에 너무나도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시기와 장소에서 등장한 독립국가들이다.


이러한 20세기 국가 건설에 있어서의 지역적 특수성을 주목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결과로 새로 태어난 독립 국가들의 정치변동과 안정성, 민주주의, 복지수준의 원인이 바로 이 지역적 특수성에 자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조건에서 국가 건설 세력이 탄생했으며,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독립국가를 건설해갔는지에 따라, 향후 정치경제적 발전의 초석이 다져졌을 것이라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3장에서는 지역적 특수성에 기반한 agent 중심의 20세기 국가 건설 이론이 어떻게 가능할지 탐색해보도록 하겠다.


데이터 출처: Roeder, P. G., Where nation-states come from: Institutional change in the age of national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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