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점 2) 구성 3) 원인 4) 경계
국가는 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국가를 등장시키는 원인은 무엇인가? 모든 정치현상의 중심에 있는 국가라는 존재, 그것이 어떻게 등장했는지에 대해 수많은 학자들이 답을 내놓았다. 내 지식이 미치는 선 안쪽만 하더라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막스 베버, 칼 마르크스 등 역사에 족적을 남긴, 그리고 역사 자체를 써내려간 사람들이 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놓았다. 현대에도 테다 스카치폴, 찰스 틸리나 다니엘 지블랏 같은, 교수의 직함 앞에 긴 칭호가 달린 사람들이 있다. 이 답들을 모아내는 것은 내 현재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 사료된다. 그저 현재 내 연구의 좁은 시야 내에서, 내 주장을 위치시킬 수 있는 간단한 분류만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햐향적 설명들
최종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국가를 기준으로 볼 때, 이보다 상위 개념에 존재하는 원인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도시 - 국가 - 세계의 경우 도시는 국가의 하위 개념, 세계는 국가의 상위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세계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원인들이 새로운 국가의 형성에 영향을 준다면, 이는 하향식 인과관계이다.
먼저 한 국가 건설 세력이 기존의 다른 국가에 소속되어 있을 경우, 기존 국가의 정치적 계산이나 이익에 따라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허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스프루이트(Spruyt)의 주장에 따르면, 제국 내의 정치 세력들이 식민지를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할 때, 새로운 국가 탄생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왜냐하면 이들 세력이 식민지들의 독립을 막도록 정치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정치적인 동학도 중요하다. 새로운 국가 건설이 어떤 강대국의 이익과 맞아떨어진다면, 그 국가 건설 세력은 보다 국제적으로 국가로 승인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새로운 국가의 출현은 세계 경제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유 무역을 통해 영토의 보유로서 획득할 수 있는 자원이나 인구 등을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경우, 기존 국가들이 보다 쉽게 자신의 식민지나 영토 등을 놓아주게 된다.
(2) 상향적 설명들
한편, 새로 태어나는 국가를 기준으로 볼 때, 그 국가보다 하위 개념에 존재하는 원인들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민족주의의 출현은 국가의 발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원인 중 하나이다. 현대 국가를 민족 국가 (nation-state)라고 부르는 것처럼, 민족은 현대에 들어와 주요한 국가의 구성단위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구성해야 한다는 민족자결주의는 국가 성립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론으로서, 국가 내부의 행정 조직이나 단위가 오히려 민족주의와 새로운 국가의 기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찰스 틸리와 같은 학자들은 전쟁을 국가가 건립되는 주요 원인으로서 설명한다. 국가 건설 세력이 전쟁을 치르면서 군비를 확충하고, 세금을 거두며, 영토를 확장하면서 국가의 조직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3) 본 주장의 위치
찰스 틸리의 전쟁-국가 이론은 특히 앞으로 내 주장을 전개하는 데에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찰스 틸리의 이론은 무엇보다 국가 건설 세력, 즉 agent에 대한 이론이다. 아직 국가 이전이거나, 국가로 부르기에는 무언가 어설픈 행위자가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의 면모를 갖추어나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론이 나타난 역사적 배경은 바로 중세-근대 유럽 국가들이다. 중세-근대 초기의 유럽의 왕조들과 도시 국가들은 소위 항시적 전쟁 상태에 놓여있었다. 이에 따라 국가 건설 세력들은 지속적으로 안보에 신경을 써야 했고, 자신을 방비하기 위한 자원과 인구의 축적 및 수취에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고 근대적 국가의 출현은 이 과정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전쟁은 자강의 방식이고, 강해지며 국가는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 독립의 방식이 주였던 시기에는 어땠을까? 20세기의 역사적 배경에서는 국가 건설 세력 상층에 존재하는 제국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강조된다. 제국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식민지들의 독립 여부는 좌우된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또한, 2차 대전 후 새롭게 편성된 국제 질서와 규범이 새로운 국가들을 허용하도록 변한 탓도 있다. 예컨대, 언뜻 생각해봐도 아시아 지역의 독립국가들의 출현은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해석에 기초한 기존 연구들에서는, 식민지나 독립운동 세력의 역할을 극히 미미하게 바라보게 된다.
향후 이어지는 2장의 마지막 글에서는 이러한 기존 연구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식민지 상황과 독립운동세력의 역할을 간과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실증적 문제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그리고 3장에서는 agent 중심의 20세기 국가 건설 이론의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