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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Nov 29. 2022

첫 깁스를 하면서 느낀 점

배리어프리, 유니버셜 디자인의 필요성을 절절하게 느끼다.

절반 정도 인대가 파열됐다. 오금까지 붕대를 감는 반깁스를 했다. 인생 첫 깁스였다.


일이 있어 잠시 밖에 나왔다. 깁스를 하고 이틀 만의 외출이었다. 걷는 게 느리고 조금만 걸어도 힘이 부친 탓이다. 30분 정도 이르게 집을 나섰다. 평소엔 자전거를 타고 10분이면 갈 거리였다. 


목적지까지는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정도 가야 하고 버스 정류장을 오가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세 번 건너야 한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거의 없는 길가에서 조금씩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앞만 보고 빠르게 걸어온다. 깁스가 없었다면 물고기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피해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을 피해 걷기가 쉽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부딪히지 않게 저 멀리서부터 보고 최대한 방향을 미리 트는 것. 바쁜 이들은 무조건 직진이다.


횡단보도에 도착했다. 횡단보도는 신호가 짧아 가장 조마조마한 구간이다. 초록불이 켜지면 바로 건널 수 있도록 턱이 없는 보도블록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몇 걸음이 편하도록 살짝 피해준 사람은 단 한 명의 외국인 뿐이었다.


문득 생각이 난다. 사람이 많은 대학병원의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왼쪽 문에는 ‘교통약자용 엘리베이터’라는 문구와 교통약자를 상징하는 심볼이 네 개 그려져있다. 휠체어를 타신 분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고 그 앞으로 사람들이 서기 시작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휠체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분은 같은 자리에서 엘리베이터가 세 번 여닫힐 동안 그냥 보고만 있어야 했다.


아차, 생각하는 동안 초록불 신호가 5초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열 걸음은 걸어야 횡단보도 끝에 닿을 수 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차들이 가득하다. 발에 무리가 가는 것 같지만 최대한 걸음을 재촉한다.


눈앞에서 타야 하는 버스를 세 차례 놓친다. 금세 문이 열리고 닫히기 때문에 달려가서 버스를 탈 수가 없다. 정류장에 도착해서 현재 위치가 ‘전전’으로 표시되는 버스를 가만히 서서 기다린다. 저상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가 왔다. 누가 누가 일등 하는지를 겨루는 것도 아닌데 너도나도 앞다투어 계단에 오른다. 겨우 버스에 올라 노란 커버가 씌어진 노약자석 좌석이 비어있는 걸 보고 안도한다. 이미 출발한 버스에서 중심을 잡으며 겨우 자리에 앉는다.


하자 벨을 누른다. 버스 뒷문의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딛기도 전에 문을 닫는 경고음 소리가 들린다. 빨리 내리라는 신호이다. 문에 옷자락이라도 끼일까 걸음을 서두른다.


500미터가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도 혼자서 나오기엔 너무나도 버겁고 힘들다. 이제 겨우 도착했는데 진이 다 빠진다. 집에만 있는 것이 갑갑하지만 당분간은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돌아가는 길엔 택시를 불러야겠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비장애인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다. 내가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되면, 나이를 먹어 거동이 불편해지면 이 불안함과 힘듦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걸까. 지금 이보다 더한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장애인을 많이 볼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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