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정신분석은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12p)
이성에 의한 사유와 언어를 통한 논리로 세계와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은 알다시피 데카르트(1596-1650)에 의해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끝없는 의문이 닿게된 종착점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였고, 그것을 '나'의 확실성에 대한 근거로 삼았지요. 그러나 생각하고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 과연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 이후로는 '나'의 근거를 찾는 작업이 이어집니다 (다른 학자들에 대한 비약이 존재할 수 있으며 옮긴이가 조금 거칠게 정리했으나 어느정도는 수긍이 가서 부분인용합니다). 흄(1711-1766)과 영국의 경험주의자들을 지나, 니체(1844-1900)는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고 추공하는 '미지의 것'을 탐구했으며 프로이트는 이를 '무의식'으로 규정했지요.
서론이 조금 길었으나, 라캉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기반해 조금 더 치밀하고 정교하게 정신분석 이론을 구조화 한 학자입니다. 그러나 라캉은 '아버지의 기능'이라 불리우는 '법'을 절대적인 것이나 불변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각각의 주체가 연결됨으로서 존재할 수있으며 그때 그때 새롭게 재창조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점이 프로이트와 라캉의 차이 중 하나입니다. (여기는 보로메오 매듭*에 관한 논의와 함께 조금 더 공부해보고픈 부분이네요.)
다시 정신분석 이야기로 돌아와서, 객관화나 일반화가 불가능한 개개인의 '특이성'을 가장 중요한 전제로 두고서, 주체로서의 삶-개인마다 다른 '사는 방식'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재창조하는 일-을 살 수있도록 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존재이유이자 목표입니다. 정신분석은 정신의료나 임상심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는 증상들이 정신분석에서는 사라져야하거나 '고쳐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겪는 중상이나 고통들은 자신만의 '사는 방식'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원하지 않는 '사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신경증자입니다. 이를 받아들이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음을 생각하기가 조금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건강'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신분석은 치료가 아니라 주체의 특이성을 자각하여 사는 방식을 바꾸는 것(315p)입니다.
운이 좋게도, 어렵고 어려운 라캉을 쉽게 풀어 쓴 입문서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를 만나, 희미하고 이리저리 얽힌 채 존재하던 생각 조각들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져온 의문이나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들이 많은 부분 이해되었습니다-완전한 종결이나 물음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해소를 목표로 하는 작업이 아님을 스스로도 알고있기에 괜찮습니다-.
이제 겨우 일회독을 마친 상태라 상당 부분 부족한 이해들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이 책을 읽었을때의 감정이나 생각들은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에 존재하므로, 잡아다가 글로 풀어내었네요. 저자의 인터뷰 답변이 제가 느낀 바와 맞닿는 것같아, 반갑게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역자: 정신분석에 대한 공부가 당신의 삶에 어떤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나요?
저자: 먼저 제가 막연하게 품고 있었던 여러 가지 관념을 정리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제 나름대로 정의하고 그 개념을 제 곳으로 삼았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신분석 연구를 통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이-물론 제 자신을 포함해서-근본적으로 '분열된 주체'라는 점, 즉 원리적으로 '스스로가 하는 일들을 알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을 알게 됨으로써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분쟁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자신이 '스스로 하는 일의 의미나 원인을 모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