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브런치 작가신청_ 기고글

by grida

엄마는 뭐든 하나는 잘하는 것이 있었으면 했다. 끈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일이 많았는데, 금방 여기저기에 빠졌다가 그 일에 실망하거나 자신에 실망한다. 좀처럼 이루어는 것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산만한 것은 엄마 닮아서 그런 거라며 위로한다. 엄마는 어떤 날은 자신이 한심했다가 어떤 날은 그래 이 정도면 괜찮지 하고 스스로 안심시켰다.


엄마가 유일하게 꾸준히 하는 일은 책 읽기와 책 모으기였다. 엄마는 책을 읽다 멋진 생각을 하는 작가를 만나면 그 작가 책을 사모은다. 엄마는 좋아하는 작가가 나와 겹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러면 더 기꺼이 책을 집에 들였다. 사놓은 책이 있는지 잊어버리고 같은 책을 중고서점에서 사 와서 크게 웃기도 한다. 가끔 일부러 똑같은 책을 사는 것 같아 물어보면 인생책이야라고 했다. 엄마는 산 책을 여기저기 위치를 바꿔가며 정리하고 나란히 정리된 책을 보고만 있어도 다 읽은 듯 뿌듯한 표정이다.

엄마는 책에서 영감을 받으면 글 쓰고 싶다고 한다. 너도 꼭 책을 부지런히 읽고 쓰라며 적극 독려한다. 엄마나이에도 책을 보면 이렇게 몽글몽글해지는 데 어린 너는 오죽하겠냐며 나를 구슬린다. 주변에 로맨스 쓰는 작가를 우연히 알게 된 엄마는 한동안 열심히 로맨스를 쓰는 듯했다. 나는 엄마가 저러다 말겠지 했지.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엄청 오글오글 거리는 로맨스를 써서 보여주었다.

-어때? 딸아?

-음....... 엄마 정말로 쓰게요?

-어. 어때? 솔직히 얘기를 해줘.

-엄마, 일단 쓰지 마요. 내용도 너무 올드하고 글형식도 올드해.

-구리다고?

-네, 요즘 누가 이런 걸 읽어!

-......

-제목부터가 이상해요. '숨 막히는 남자의 배려'라니!

-야! 로맨스는 원래 그런 식으로 쓰는 거야. 로맨스는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네가 로맨스를 몰라서 그래!

-하여튼 내 스타일 아니에요. 쓰지 마요.

나는 입을 삐죽삐죽 내미는 엄마가 보여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입을 다물었다.

그 후로 엄마는 쓴 글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는 글을 못쓴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듯한데, 난 그 로맨스를 못 썼다고 얘기한 거지. 결코 글을 못 쓴다고 애기한 것이 아니다. 엄마가 거실 책상에 앉아 가끔 글을 쓰는 모습을 봤지만 날 귀찮게 할까 봐 묻지 않았다. 엄마는 지인들과 독서모임을 만들고 동네독립서점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가입해 책 읽기에 집중했다.


한강작가님의 노벨문학상수상 후, 자기 일처럼 기뻐하던 엄마는 먼저 한강작가님의 책들을 샀다. 엄마는 소설을 읽고 있는 나를 그윽한 눈으로 지긋이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고, 나에게 슬며시 글 쓰고 싶지라고 물어본다. 아그그 난 그냥 독서가 즐겁다. 난 향유독서가다. 절대로 글을 쓰지 않을 거다. 엄마에게 세상에는 잘 쓰는 작가들이 너무 많다고 얘기하면 그래도 너만의 얘기가 있잖아라거나 너만 쓸 수 있는 글이 있을 텐데 또는 잘 쓸 수 있을 거 같은데라고 속삭이듯 얘기했다. 엄마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상당히 모호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딸! 작가는 세상에게 밑그림을 그려주는 사람이야.(먼 곳을 바라보며)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제 세상이 점점 좋아질 거야.

-네? 네에.


엄마와 쇼핑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노트북에 모아놓은 글을 보았다. 엄마는 너 읽지 마라며 못 읽게 하다가, 이내 한 번 읽어 볼래 하며 상기된 표정이다. 원래는 하나만 읽어보려고 했는데, 읽다 보니 여러 편을 읽었다. 나에 대해 쓴 글이 많네. 엄마는 나를 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엄마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엄마는 내 감상평을 궁금해하는 듯했지만 묻지 않길래 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때 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 얘기를 쓴 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며칠 뒤에 엄마가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딸, 내 글 어땠어?

-어, 엄마 잘 썼던데, 깜짝 놀랐잖아요.

-왜에?

-글을 잘 써서.

-정말? 엄마 기분 나쁠까 봐 다르게 얘기하는 거 아니지?

-에이, 그러면 저번에 물었을 때도 잘 쓴다고 말했겠죠.


엄마, 글 잘 써요.

엄마는 눈이 더 커졌다. 내 말이 부서져 작은 별이 되어 엄마눈에 박혔나 보다. 엄마는 반짝반짝 한 눈으로 몇 번이나 나에게 확인한다. 정말 잘 쓰냐고. 딸에게 인정받아서 좋다고 책 좋아하는 딸이 말하니까 더 신뢰 간다며 엄마는 자기 전까지 몇 번이나 말한다.

엄마는 고민만 하던 글쓰기모임에 가입했고, 일단 써보겠다고 했다. 엄마는 거실책상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두드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는 밥을 차리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청소를 하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엄마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딸이 있어 좋다고 흥얼거린다.

난 한 게 없는 거 같은데, 일단 설레는 엄마가 좋다.

엄마는 오늘도 나를 부른다.

딸아, 이 글 어때?

난 읽고 냉정하게 평가할 거다.

엄마가 기대찬 표정으로 나를 본다.




*딸에게 내용감수 받았습니다. 늘 읽어주는 딸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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