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했다.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 삶이 버거울 때 우주를 생각한다고.
그러면 내 힘듦은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미세먼지보다도 더 미미한 존재 안의 고민들이니 넘길 수 있다고.
나도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위로도 들어오지 않는 바닥을 겪어내고 있는 사람에게 우주를 생각하라는 말은 폭력적이다. 미세한 고민에 얽매여 있는 내가 더 못난 존재가 되는 것 같은 느낌. 나노 같은 먼지도 탁 털어내지 못하는 내가 못났다.
그렇다면, 바꿔 생각해 볼까?
사람 하나하나에 심오한 하나의 우주를 가졌다. 쌀알 하나에도 우주가 있다는 어떤 선인의 말씀처럼 사람은 얼마나 큰 우주를 가졌을까!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이 고민은 적어도 크기가 지구만 하다. 내 안의 어떤 태양이 지구만 한 이 고충을 무한한 중력으로 끌어당긴다. 절대로 이 지구를 멀리 보내버릴 생각이 없다. 지구만 한 고민도 떨어낼 수 있는 사람은 내면의 힘이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아냐고?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고 말로 꺼내는 것조차 힘든 때가 있었다. 아니 많았다. 살아보니 좋은 일보다 의지를 벗어나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훨씬 많더라. 그때 주변의 현실적인 조언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왜 그 문제에 매달려 있냐고! 너를 괴롭힌 사람은 웃으며 일상을 보낼 텐데, 너는 왜 그리도 미련하게 그 생각에 빠져 슬프게 만드냐고. 나는 그 말에 더 울었다. 이 지구만 한 좌절을 모르는구나. 지구만 한 고민이 은하계만큼 커진다. 나는 더 조용히 이 지구 안으로 들어간다. 일단 이 문제를 정면돌파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슬퍼하고 좌절하고 화를 내고 늪에 빠져 지내도 된다. 시간이 흘러 보내게 놔둬야 한다. 물도 못 마실 때는 마시자 말자. 이참에 살도 빠지겠지.
충분한 시간을 보내면 나를 출발선에서 한 발짝 물러난 곳에 데려다 놓는다. 한 발만 내디디면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말이다. 그때 내편만 들어주는 사람들만 만나자. 이야기를 경청하고 위로만 해주는 사람만 만나자. 세 번쯤 욕하고 나면 조금 더 작아질 것이다. 지구만 한 일이 달만큼 작아졌다. 나를 내가 좋아하는 최고의 장소에도 데려가자. (내 나름의 출발선에 설 수 있는 방법은 다음에 얘기하겠다.) 당신과 나는 기필코 일어서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살짝 지루하고 평안한 일상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이제 코스모스 벽돌책을 읽을 수 있겠다.
내 고민은 미세해졌다.
*이미지는 45살 여성 환자의 뇌에서 떼어낸 쌀알 반 톨 크기의 대뇌피질 조각. 6개 층으로 이뤄져 있는 피질의 각 층을 색깔을 달리해 표시했다고 한다. 오른쪽이 가장 바깥층이다. -하버드대. 구글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