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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May 24. 2024

대발이 아부지, 세웅 씨[1]

버럭 아빠의 환골탈태

 1991년 11월부터 방영된 하희라, 최민수 주연의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두 여고 동창생의 아들과 딸이 결혼하여 시부모와 함께 살며 가부장적인 시댁을 슬기롭게 변화시키는 과정을 그렸다. 최민수 집안의 가부장적 분위기와 자유분방한 하희라의 친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이 톡톡 튀는 대사와 공감 어린 내용으로 잘 버무려져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우리 가족은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재미도 있었지만, 이순재 배우가 맡았던 대발이 아버지 캐릭터 때문이었다. 작가가 우리 아빠를 모티브로 썼나 싶을 정도로 깐깐한 목소리, 버럭거리는 말투, 가부장적인 태도까지 대발이 아버지는 아빠와 똑같았다. 우리 집 여자들은 매회 아빠와 데칼코마니인 대발이 아버지의 활약상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마침 오빠가 서울 여자와 연애 중이라 모든 에피소드가 남 일 같지 않아 우리는 더욱 그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우리 아빠는 버럭 고집쟁이 구두쇠다. 조용히 말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데 늘 버럭거리며 말씀하신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기억이 젊은이 뺨치는 아빠의 사전에 ‘깜빡’이란 단어는 없다. 혹시 엄마가 중요한 약속을 잊거나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두었다 태우기라도 하면 노발대발하셨다. 매캐한 연기 때문인지 아빠의 천둥 잔소리 때문인지 엄마는 눈이 매웠다. 쓸데없는 곳에 절대 돈 쓰는 법 없는 구두쇠 아빠에게 옷이란 그저 추위를 막아주고 몸을 보호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옷 한 벌을 사면 다 해질 때까지 입고 다니니 엄마는 항상 못마땅하셨다. 아빠가 친구분들보다 늙수그레해 보이는 게 싫어 엄마는 당신 옷은 시장에서 사 입어도 남편 옷은 꼭 백화점 메이커로 샀다. 그 정성을 봐서라도 군말 안 하고 입으면 될 것을 아빠는 가격은 얼마인지, 어디서 샀는지 꼬치꼬치 물으셨다. 백화점에서 사 온 걸 들키거나 옷 가격이 10만 원만 넘어가도 돈이 썩어나냐며 도로 물러오라 호통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빠 옷을 사면서도 카드 한번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덤으로 비상금까지 털어야 했으니 엄마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기껏 발품 팔아 힘들게 사 왔는데 엄마 생각해서라도 그냥 입으라고 옆에서 아무리 거들어도 아빠에게 한 번 아닌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니었다. 쇼핑한 날은 아빠,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저녁 식사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빠의 끈질긴 고집에도 지치지 않고 노련하게 헛짓을 반복하는 엄마를 보며 누구 고집이 더 센지 의아해진다.       

아빠 생신, 내 눈에 아빠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아빠는 못 말려

 평소처럼 주말이 되어 TV 앞에 모여 앉아 <사랑이 뭐길래>를 보고 있었다. 대발이 아버지가 늘어나다 못해 구멍까지 숭숭 뚫린 러닝셔츠를 입고 작은 볼일에는 휴지 한 단만, 큰 볼일에는 두 단만 쓰라며 가족들을 모아 놓고 호통치는 장면에서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저 장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리고 일제히 아빠를 향해 돌아봤다.


 어릴 때부터 다정함이라곤 느껴볼 수 없던 아빠와 나는 대화는커녕 함께 있는 시간조차 부담스러웠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우리 삼 남매와 아빠를 보며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엄친남-엄마 친구 남편-이야기의 새로운 에피소드는 한숨의 다음 순서였다.

 “성조 아부지는 어디 갈 때마다 딸내미랑 팔짱 끼고 다니는데 지난주는 와코루 매장 가서 속옷 세트도 사 줬대요.”

 대화의 소재가 팔짱과 속옷 세트인 걸로 봐서 화살이 분명히 나와 아빠를 향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 입을 쩍 벌린 채 엄마를 쳐다보았다.

 ‘아빠와 딸이 팔짱을 낀다고? 아빠와 딸이 어떻게 속옷매장에 같이 들어갈 수가 있지?’

 아빠와 뻘쭘하게 서서 속옷을 고르는 장면은 아무리 애를 써도 상상할 수 없었다. 데면데면한 아빠와 팔짱을 낀다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듯 근질거렸다.


 물론 경상도 남자라고 모두 아빠 같지는 않았다. 성조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다정한 사람도 있었다. 고등학교 절친이었던 미나 아버지도 딸 사랑이 끔찍했다. 미나네 집에 전화를 걸면 가끔 미나 아빠가 전화를 받아 바꿔 주셨는데 목소리나 말투에서 자상함이 꿀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아, 네가 영주구나. 딸, 전화받아.” 수화기를 건네는 짧은 순간마저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까지 들렸다. 하지만 미나가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 달라고 하면 아빠는 수화기를 거칠게 탁 내려놓고 전화받으라며 온 동네가 떠나가듯 고함을 지르셨다. 반갑게 전화받는 내게 미나의 조심스러운 첫마디는 늘 똑같았다.

 “너희 아빠 화나셨나?”


 사춘기가 한창이던 시절 나는 아빠의 툭툭 던지는 말투가 너무 아팠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가끔 했다. 엄마는 아빠와 자주 다투셨다. 한 번 만에 들어줄 부탁도 대여섯 번씩 어렵게 꺼내야 못 이기는 척 들어주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슴에 대못을 여러 번 박고 엄마 눈에 기어이 눈물을 내고서야. 그러다 한 번은 두 분이 정말 격하게 싸우셨다.      

지금은 다정하신 두 분, 역시 60년 부부생활의 내공

-2편도 기다려 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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