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셔니스타 Jul 03. 2024

 대화의 유(有)희열 [2]

말하면 보이는 것들

가랑잎과 솔잎의 다툼

 남편과 나는 술을 좋아해서 가끔 동네 선술집에 가거나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눈다. 남편은 예나 지금이나 대화 상대로 손색이 없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경계심이 일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나도 남편 앞에서는 조잘조잘 많은 이야기를 한다.


 남편은 학원에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거나 글쓰기 수업에서 작은 칭찬이라도 받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고민이 있어 마음이 심란할 때는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 주었다. 이미 벌어져 손써볼 수 없는 일로 의기소침해 있을 때도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죽이 잘 맞는 남편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다. FM 공인중개사인 남편은 오직 고객과 물건의 중개 역할에만 너무 충실하여 부를 축적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남편과 자주 만나는 부동산 협회 소장들은 적어도 꼬마 빌딩 한두 채라도 가지고 있고 외지에 사 둔 땅뙈기라도 있어 중개 수익과는 별도로 비노동 급여를 꼬박꼬박 받는다.


 얼마 안 되는 여윳돈으로나마 대출 끼고 투자할 곳을 찾아보자고 조르는 내게 남편은 10년째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요즘 같은 경기와 고금리에 괜히 헛짓하다 밖에 나 앉을 일 있냐는 것이다. 경기는 언제나 나쁘지만 그럼에도 돈 버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대희쌤은 얼마 전부터 경매 공부하며 투자한다더니 벌써 경제적 자유를 이뤘대.”


 귀가 습자지보다 얇은 내가 모임 나갔다 주워들은 말로 안주 삼으니 남편은 이에 질세라 경매가 왜 힘들기만 하고 돈은 되지 않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면 공부라도 좀 해. 책도 좀 읽고. 자기처럼 성실하게 중개만 하는 소장이 어디 있냐?”


 남편은 신경 쓰이는 계약 건만 마무리하면 경매 공부를 시작하겠다 큰소리쳤지만, 그것도 벌써 한참 전의 일이었다. 새벽 줌모임에 참여하며 없는 시간 쪼개가며 자기 계발하는 분들을 만나다 보니 눈이 한껏 높아진 나는 남편의 입만 동동 뜨는 변명에 진력이 났다. 눈이 침침하다는 핑계로 책 한 권 읽지 않고 드러누워 TV만 보는 저녁 일상에도 슬슬 짜증이 돋고 있던 터였다.


 술도 마셨겠다 기분이 알딸딸해지니 잘난 척쟁이 남편의 면상에 김치 싸대기를 한 방 날리고 싶은 욕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던지듯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원통형 젓가락이 분노를 가득 싣고 데굴데굴 굴러가다 바닥에 뚝 떨어졌다.


  "머리에 먹물만 잔뜩 들어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거 있어?”


 젓가락이 바닥에 쨍하며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남편의 치켜뜬 눈을 보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평소 남편은 젓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거나 물건을 소리 나게 탁 놓는 행동을 싫어했다. 좋고 싫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나와 달리 웬만하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눈을 내리깔더니 잔을 조용히 내려놓고 계산을 한 후 나를 두고 나가 버렸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지며 사람들이 모두 나만 보았다. 흘끔흘끔 내리 꽂히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니 부끄러움이 몰려와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휴대전화를 슬쩍 챙겨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남편은 빠른 걸음으로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다.


 “아, 미안하다고!” 나는 한껏 풀이 죽어 남편 뒤를 뛰다시피 졸졸 따라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닥거리다 다투면 남편은 먼저 사과하며 어떻게든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반면 나는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며 서러운 감정을 곱씹다 화를 품은 채 잠들곤 했다. 그런데 남편이 오십 줄에 들어 생전 보지도 않던 주말 드라마에 빠지기 시작한 이래로 입장이 뒤바뀌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먼저 손 내밀지 않는 이상 남편은 절대 잘못했다고 먼저 말하는 법이 없었다. 다툼의 원인은 남편이 제공했지만 힘의 균형에서 지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코를 고는 남편과 달리 나는 그날도 단잠 자기는 글렀구나 싶었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아 몸을 계속 뒤척였다.


 “머리에 먹물만 잔뜩 들어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거 있어?” 왜 갑자기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을까?


 그때 나는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을 읽고 있었다. 1905년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로 향한 1,033명의 조선인 이주 계약 노동자들의 비참했던 삶을 모티브로 쓴 역사 소설이었다. 천민부터 양반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숨 가쁘게 이어졌다.


 타민족에게서 멸시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뙤약볕이 내리쬐는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지만 딱 한 사람, 몰락한 양반 가문의 가장이며 고종 황제의 친척인 이종도는 그곳에서조차 양반다리를 하고 논어를 읽었다. 양반이 어떻게 상것들처럼 몸을 쓰는 일을 할 수 있느냐며 되지도 않은 권위를 세운 것이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생존이 힘든 상황, 기존의 관습을 버리고 뼛속까지 바뀌어도 시원찮은 판국에 양반의 알량한 자존심을 고집하는 이종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구마 백 개쯤 먹은 듯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지 않으면 뒤처질 거라는 불안감에 새벽 기상을 하고 독서 모임을 하며 어떻게 미래를 살아갈 것인가 늘 고민하는 내게 한번 해 보지도 않고 안 되는 이유만 줄줄 늘어놓는 남편에게서 현실을 회피하는 이종도의 모습이 보였다.

 그즈음 나는 열심히 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지쳐 ‘왜 나만’이라는 피해의식에 절어있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왜 나만 이렇게 종종거리며 안간힘을 쓰고 사는지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안방 TV 앞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는 남편이 보기 싫어 죽을 지경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던 남편을 향한 원망이 옆방 투숙객들의 소란을 틈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급기야 그 원망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음을 어지럽혔다. 안팎으로 시끄러운 밤을 보내고 일어났더니 눈이 퀭하고 얼굴이 푸석푸석하여 전날보다 십 년은 더 늙어 보이는 여자가 거울 속에 비쳤다. 발바닥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따라 기분도 바닥을 쳤다.


 만사가 귀찮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의 푸르름도 이슬을 머금은 나무와 풀도 화단에 소담스럽게 핀 수줍은 꽃도 전혀 예뻐 보이지 않았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하늘의 층고가 점점 낮아지며 어디선가 비릿한 비 냄새가 풍겨 왔다.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자라는 우울을 떨칠 수가 없어 나는 예정보다 일찍 짐을 싸 숙소를 나섰다.  

   

우리의 토크쇼는 해피엔딩

 냉랭한 집안 분위기에 시위라도 하듯 집을 비웠던 아내의 행적이 궁금하지도 않은지 다녀왔다는 인사에도 남편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어디 갔었냐는 추궁은커녕 침묵만 가득 허공을 메운 집안 공기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이야기 좀 해.”


 말 한마디 하지 않은지 이틀째.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남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하게 주방 식탁에 앉았다. 냉장고 안에서 시원한 맥주 두 캔을 가지고 와 남편에게 하나 건네고 한 모금 들이켰다. 막혔던 숨이 조금 트였다. 며칠 동안 가벼운 대화도 없었던 터라 마주 앉은 시간이 어색했다.


 내키지 않은 듯 비스듬히 앉아 딴청 피우던 남편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이번 시험 후에는 어디 다녀왔냐고 대화의 물꼬를 트자 나는 지난밤 묵었던 숙소에서의 소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금씩 더해가는 남편의 추임새에 힘입어 과장된 표정과 목소리로 전날의 모험담을 몽땅 쏟아내고는 잠시 침묵하다 할까 말까 망설이던 사과의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말이 막 나와 버렸어.”

이미지 출처 Unsplash

 먹물이라면 내 머리에도 가득하지 않은가. 두려워서 핑계만 대고 하지 않은 일이 한 트럭이었다. 큰맘 먹고 한두 번 시도하다가도 눈에 띄는 성과가 없으면 다시 일어설 용기도 내지 않았다. 천지 창조 설계자인 하나님도 울고 갈 거창한 계획을 세워 두기만 하고 손 하나 까딱하기 귀찮아했다. 갖다 붙일 핑곗거리는 차고 넘쳤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나이가 많아서, 자신 없어서. 가랑잎이 솔잎 보고 바스락거린다고 한다더니 미루기만 하는 못난 내 모습을 남편에게서 발견하고 투사했다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고개만 끄덕거리며 조용히 듣던 남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기 걱정할까 봐 이야기 안 했는데.”


 남편은 남편대로 고민이 많았다. 부동산 경기는 날이 갈수록 안 좋아져 최근에는 문을 닫는 곳도 여럿 되었다. 공들인 거래가 성사될 것처럼 진행되다가도 매수자의 변심으로 아슬아슬하게 불발되었다.


 얼마 전 대구 남구에서 발생한 수십억 원대 전세 사기로 인해 남편 사무실 부근의 중개업소 역시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다행히 남편은 정석대로 꼼꼼하게 일하는 사람이라 연루되지 않았지만, 그 일로 직격탄을 맞아 폐업하는 지인도 있어 남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중개업은 무엇보다 신뢰가 기본이다. 가뜩이나 네이버 부동산이니 직방이니 부동산 중개 어플의 등장으로 남편 같은 중개업자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판국에 흉흉한 전세 사기 사건 때문에 성실한 중개인까지 손해가 말이 아니었다.


 가장의 무게를 고스란히 견디고 있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너무나 바라던 아이가 태어나 한 곳을 바라보던 시선은 삶의 고단함으로 조금씩 각도를 틀더니 다른 곳으로 향할 때가 더 많았다. 마음에 조금이라도 거리끼는 일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기쁜 일도 힘든 일도 모두 함께 하자 했던 약속은 가뜩이나 힘든데 나까지 보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섣부른 배려가 되어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말로 다 못 해 쌓였던 찌꺼기와 서운했던 감정을 술과 함께 비워 내며 우리는 나란히 어깨를 부딪쳤다. 자라 온 환경도, 좋아하는 음식도, 생활 방식도, 생각도 모두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우리를 닮은 아이를 만나게 된 과정은 기적과도 같았다. 묵은 감정이 지나간 자리를 서로 어루만지다 남편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전날 밤 떠들썩했던 소란의 주인공이었던 그들은 부끄러웠던지 체크아웃 시간보다 훨씬 일찍 주위를 기웃거리며 숙소를 빠져나오다 때마침 비슷한 시각에 짐을 챙겨 나서던 나와 마주쳤다.


 배낭을 메고 양쪽 어깨가 내려앉을 듯 가방을 몇 개씩이나 걸친 남자는 캐리어를 끌고 있으면서도 여자가 들었던 짐까지 달라고 하더니 짐꾼처럼 성큼성큼 앞장섰다.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며 경쾌한 걸음을 걷다 살짝 뒤돌아 나를 보았다.


 괜히 아는 척하기도 뭣해 잠자코 그들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하룻밤 사이 다시 수줍은 웃음꽃이 피어난 가족을 떠올리니 답답했던 체기가 쑥 내려갔다.


 “해피엔딩이야. 우리처럼.”


나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