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된/될 분들에게
나는 디자이너였고 현재도 디자이너이다.
전공을 살려 패션 디자이너로도 일을 하였고 큰 내수 브랜드에서 소재 디자이너로도 일했다.
직무를 바꿔서 유명 쇼핑몰에서 웹디자이너로도 일했고 에이전시에서 어플 디자인을 하며 UX 디자이너로도 일했다. 현재는 최종 목표였던 UX기획자로 일하고 있으며 웹디자인을 부업으로 삼고 있다.
5년 정도의 디자이너 생활 후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지금, 나는 이제 디자이너가 된 사회초년생 디자이너분들에게 몇 가지 조언 혹은 걱정, 부탁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디자이너로써 겪었던 일들과 아쉬웠던 일들을 종합하여 적는 글이다.
어떤 회사에 입사할 때 가장 고민하게 되는 것이 바로 '경험'이냐 '연봉'이냐 일지 모르겠다. 디자이너에게는 경험이 곧 아카이브가 되고 재산이 된다. 그래서 신입 디자이너에게는 무엇보다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나중에 경력 이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겼을 때 회사에 앉아만 있던 디자이너라면 포트폴리오에 담을 디자인 하나 없이 빈수레로 이직을 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회사에서는 터무니없는 연봉을 들며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어필한다.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봉 또한 중요하다. 전 회사에서 받은 연봉을 기준으로 연봉협상을 하는 회사가 많기 때문에 그 점도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걸 선택하라는 말인가?
무조건 '본인의 선택'이다. 이 정도 연봉이면 경험을 산다 생각하고 일할 수 있을 것같다- 라고 생각된다면 경험을 선택하면 된다. 경험과 연봉이 모두 맞는 곳이라면 더더욱 좋다. 하지만 연봉이 높은 곳에서 크게 시작하고 싶고 혼자서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경험이 없을 것 같은 곳이라도 연봉을 선택해도 좋다.
많은 분들이 '취직'이라는 것에 급급해서 서둘러 입사하다 보니 본인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고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입사 전에 하게 될 일을 정확히 물어보고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웹디자인 공고를 지원해서 들어갔지만 '전체적인 디자인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는 설명만으로 입사한 뒤에 ppt 디자인이나 카탈로그 디자인을 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내가 기대했던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될 거고 물 경력만 가득 차다가 이직을 할 때쯤이면 현실 자각만 제대로 하게 될 것이라는 점.
내가 가게 될 곳을 정확하게 알고 면접 시나 입사 전 업무에 관해 정확하게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입사를 했는데 물 경력 가득 찰 느낌이 들거나 이 회사에서 나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이직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철저히' 준비하자. ‘1년을 넘겨야 해서’ , ‘퇴직금은 받아야 하니까’ 등의 이유로 늦추지 말고 떠날 때가 되었다면 바로 오늘부터 준비해야 한다. 본인이 지금까지 해왔던 크고 작은 모든 작업들을 모으고 업그레이드하여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포트폴리오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포트폴리오라는 점은 모두들 아는 부분일 듯하다. 3년 경력도 10년 경력 수준의 포트폴리오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그런 포트폴리오가 많지 않겠지만...)
일하면서 꽤 여러 번 느꼈던 점 중 하나는 유난히 '디자이너'를 쉽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가 짜디짠 연봉을 받는다는 건 이미 익히 소문난 업계의 관례 같은 것이 되었고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5년 전에는 그랬다.) 웹디자이너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 이니 서류 디자인부터 캐릭터 일러스트 등 모든 디자인은 다 할 것이라는 생각도 허다하다. 단지 '포토샵'을 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내 업무에 방해되는 부분이 아니라면 그것도 해줄 수 있다 이거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건, 디자이너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단지 툴을 쓸 줄 안다는 이유로 처음 해보는 분야의 디자인을 맡기면서 고퀄리티를 기대하며 평가질한다던가 터무니없는 양의 업무를 쥐어주고 간단한 일이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며 짧은 기간을 준다던가. 혹은 이 디자이너가 그만둬도 밖에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부분이라던가.
넓게 보면 다른 디자이너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디자이너들은 이런 시각을 바꿔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편집디자이너가 따로 있는 이유, 웹디자이너, ux디자이너가 따로 있는 이유. 그리고 이들이 나가면 모든 업무가 올 스탑 된다는 부분.
나는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업무와 직무에 조금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디자이너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 '손재주가 좋을 것 같다.' 라던가 '감각이 뛰어날 것 같다.' '예술계의 느낌이 난다.' 등의 말들을 많이 들었다. 물론 디자인은 감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곳에서 일한들 업무 할 때의 능력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옷을 잘 입는다던가 손재주가 좋다던가 앱을 잘 만진다던가 하는 부분은 유리할 수는 있어도 디자인을 잘하게 만들어주는 결정적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 때문에 의류학과를 다니면서 중도 퇴학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고, ux디자이너를 준비하는 지인들이 포기하는 사례도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얘기한다. 현업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모든 디자인은 감각이 아닌 '논리'에서 근거한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능숙함이나 안정감은 절대 연습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업무를 겪어보고 포트폴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보고. 소비자의 피드백을 받는 루틴이 여러 번 반복되어야 '아 내가 이제 디자인을 좀 알겠다.'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요즘 앱이 트렌드니까.' '멋있으니까.' '준비하기 제일 쉬울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시작했다면,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바란다. 한 번 발을 들이면 나가기 쉽지 않은 곳이 바로 디자인 계열이다.
업무를 해보면 디자이너의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사무적이라서 놀란 분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언가를 꽤 그럴듯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의 중심에 있는 디자이너는 확실히 매우 매력적인 직업이다. 이 글을 읽는 새내기 디자이너분들이 모두 디자이너로써 멋있고 똑똑한 회사생활을 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