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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Apr 26. 2024

떠나간 존재가 남긴 것들

바람에 흔들리는 이팝나무를 보며

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존재가 있다.

19년의 시간 동안 나와 내 가족들에게 한없이 사랑스러웠던 존재.


아침 산책을 하는데 발견한 이팝나무가 저 멀리 텅 빈 건물의 주차장에서 안녕하듯이 흩날리고 있다.

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던 날, 똘이의 노견 생활을 함께 지켜봐 주었던 동물병원 원장님이 염을 해주시기로 했다. 똘이의 소식을 알리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밖으로 보이던 나무가 이팝나무였다.

작고 얇은 하얀 잎이 뭉쳐서 큰 덩어리를 만드는데 그게 마치 똘이 같아서, 똘이가 꼬리를 흔드는 것 같아서 더 슬펐던 나무.


똘이는 우리 가족과 함께한 19년 동안 막내아들이었고, 힐링제였고, 비타민이었고, 동생이었으며 절친한 친구였고 상담가였다. 똘이가 사는 동안 남긴 존재들은 지극히 존재 그 자체였다. 살아있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숨 쉬는 것이었다. 그런 똘이가 재작년 봄에 떠난 후 남긴 것들이 무엇일까. 존재를 떠나버린 똘이는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똘이와의 마지막 날은 슬픈 날인 동시에 우리 가족의 형체 없는 사랑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4명이 모두 하나의 다름없이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 본 적이 살면서 얼마나 있을까. 그날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등을 토닥였다.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워 다 같이 손을 잡고 잠에 들었다. 같은 슬픔을 공유한 우리 가족은 서로의 눈물을 가려주는 이불이 되었다.


똘이가 가고 2년이 흘렀다. 우리 가족은 아직까지 똘이 이야기를 한다. 똘이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낼 때마다 우리들 사이의 붉은 실이 반짝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똘이는 떠나서 회포가 되었다. 똘이 이야기를 하면 행복했던 그때가 떠오르는 추억이 되었다. 똘이는 우리 가족의 붉은 실이자 기억이 되었다.


4월이 되면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뜻한 바람에 벚꽃이 휘날리면 일렁일렁하는 내 마음도 어느덧 똘이를 추억하기 시작한다. 재작년 이때쯤에 우리 가족은 몸이 많이 쇠약해진 똘이를 데리고 벚꽃을 보여주러 나갔었지. 똘이는 그렇게 벚꽃을 보고 3주 뒤에 우리 곁을 떠났다. 벚꽃이 지고 이팝나무가 흔들리던 그때.

똘이는 내게 봄바람이 되었고 이팝나무가 되었다. 엄마와 나는 여전히 봄산책을 할 때마다 이팝나무를 발견하며 어여쁘다 얘기하고 어김없이 똘이와의 추억을 말한다. 똘이는 우리에게 계절이 되었다.


나는 똘이가 가고 1년 하고 4개월 뒤 똘이와 똑 닮은 몰티즈를 입양했다. 6개월의 어린 나이에 왔던 활기차고 해맑은 똘이와 다르게 우동이는 3살의 나이를 먹는 동안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겁이 많고 잘 우는 강아지이다. 우동이는 똘이와 생김새가 많이 닮아서 가끔 자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우동이를 보며 가끔씩 똘이를 향한 그리움에 우동이의 이름대신 똘이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우동이는 조금씩 우리 가족에게 똘이에 대한 그리움을 사랑으로 채워주고 있다. 똘이는 우동이의 이름에도 존재했다.


똘이가 떠나고 나서 똘이는 우리 가족에게 형상으로 남을 줄만 알았다. 하나의 유령 같은, 잡을 수 없는 하나의 영혼 같은 그리움 그 자체. 하지만 똘이는 우리에게 이제 존재도 형상도 아닌 다른 것으로 남았다.

계절로, 회포로, 노래로, 이팝나무로, 이름으로.

더 오래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로.


내일은 똘이의 2주년 기일이다. 우리 가족은 여전히 각자의 집에서 모여 똘이 얘기를 하고 똘이를 위한 작은 꽃을 산다. 이제는 내 남편과 우동이까지 두 존재가 더 모여서 얘기한다.

오늘도 똘이는 하나의 회포로 남는다. 하나의 수다로 남는다. 하나의 시간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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