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서 가장 우려한 순간이 가장 행복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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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편과 결혼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한 나에 대한 자괴감’
이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때때로 제일 좋은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에 언제나 고심했다.
연애 때부터 남편은 그 속이 어디까지인지 모를 만큼 깊은 구석이 언뜻 있었다.
그것이 결혼하면 나에게 자괴감으로 느껴질까 우려했다.
나는 무언가 말하는 사람이고 남편은 언제나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는 걸 잊어버리는 남편을 위해 포스트잇을 붙여놓는 사람이었고 남편은 조용히 불을 꺼주는 사람이었다.
한숨소리에 나는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이었고 남편은 말없이 담요를 가져와 덮어주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남편은 퇴근을 하고 와서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지친 기색 없이 우동이의 저녁산책을 맡고 제일 늦게 침대에 눕는다. 철없는 나는 그런 남편을 가만히 바라보다 괜히 하릴없이 애교를 피운다.
그리고 남편은 그 와중에도 매일 저녁차린 나의 수고로움만 칭찬한다. 남편은 내가 나도 모르게 그의 힘듦을 느끼게 한다. 아무런 생색도 없이 따뜻하게 느끼게 한다.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말하는 게 쑥스러운 내가
여보 힘들지 수고했어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을 발끝에서부터 진심으로 우러나오게 만든다.
내 남편은 팬시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트렌드에 민감한 성격도 아니다. 20대 때만 해도 그런 사람들이 좋았는데 지금은 이 사람이 다른 여자가 아니라 내 남편이라 다행이다 생각한다.
그저 누워있는 것이 가장 좋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사랑표현인 부지런함이 내게 매일 배송 온다. 나에겐 그의 가벼운 엉덩이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취미이다.
내 남편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깨닫게 만드는 것은 성경책이나 경전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
나는 이제 남편을 위해 조용히 야채주스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은 나를 위해 일정에 맞춰 알람을 맞추는 사람이 되었다.
10년쯤 뒤면 나도 남편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멋진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남편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널따란 평화를 느낀다.
오늘도 나는 이런 남편이 내게 사치스러운 존재라고 깨닫는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는 내게,
네가 좋은 사람이니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말해주는 친정식구들이 있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이제 세상 누구도 내편이 아니어도,
이 사람들만 있으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든든하고 행복하다.
적지 않으면 휘발되는 생각은 적어야 오래 남는다고 해서 잊지 않기 위해 끄적이는 메모.
언젠가 남편이 얄미워 보일 때 꼭 오늘을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