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한 나(무) 자신을 본다.
벚꽃이 지는 때가 왔다. 짧은 클라이맥스를 뒤로하고 연두색 잎을 남기고 열심히 흐드러진 벚꽃. 벚꽃은 필 때도 질 때도 열심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입구부터 벚꽃이 가득하다. 단지 안으로 들어오면 큰벚꽃나무에 둘러 쌓여 앞이 아니라 위를 보게 된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속에 강아지와 벚꽃을 구경하는 나도 모두 벚꽃에 심취해 있었다. 척박한 출근길에도 벚꽃을 찍는 그 시간이 사람들에겐 아침의 한 즐거움이었으리라.
오전 일찍 헬스장을 다녀와서 집에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향기가 났다. 떨어진 벚꽃 잎이 예뻐 땅만 보고 걷던 내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향기인지 궁금해하던 때에 코너를 돌자 작은 연보라색 나무가 보였다. 낡은 상가와 상가 사이, 우리 동네에서 차가 자꾸 지나다녀 사람들도 가장자리로만 걷는 작은 골목에 라일락 화분이 있었다. 간판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라일락은 작은 통가지 하나에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몇 안 되는 얇은 가지를 내밀고 향기를 열심히 내뿜고 있는 중이었다. 저 나무가 말할 수 있다면 지금 화분이 아니라 더 넓은 땅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으려나. 더 위로 자라고 싶은 그 마음이 간판들 사이로 들어가 2층으로 계속 뿜어져 나가고 있다.
화려하고 예쁜 벚꽃들이 지고 화분 속 라일락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그리고 발길이 붙잡힌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라일락 향을 맡고 한 번씩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벚꽃은 시각을 붙잡지만 라일락은 후각을 붙잡는다. 작은 라일락 나무에서도 강한 향기가 나는 것은 화분 안으로 켜켜이 스며든 강한 뿌리의 힘에서 나오는 걸까. 라일락 나무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이 편의점은 바깥에 먹을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곳이었는데 종종 동네사람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하교한 학생들이 앉아 컵라면을 먹기도 한다. 한 번도 이곳에 앉아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내가 라일락 나무를 보려고 앉는다. 가만히 앉아 바람에 산들거리는 라일락 나무와 향기를 맡는다. 그 향을 해치고 싶지 않아 향이 나지 않는 그냥 물을 사 와 마신다. 왠지 모르게 기특한 라일락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벚꽃 콘서트가 열리는 아파트 단지 공연장 밖으로 작은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같아 기특한 생각이 든다. 내가 바로 그 공연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열심히 응원해주고 싶다. 그 작은 화분 속에서도 잘 피어났다고. 벚꽃은 지고 꽃잎을 뿌려대지만 너는 향기로 날 이곳에 앉혀놓았다고. 출근길에 사진을 찍히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는 것은 너도 똑같다고. 더더 멀리 뻗어서 건물을 가릴 만큼 큰 나무가 되어보라고.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벚꽃나무 길을 지난다. 이 벚꽃나무가 있어 라일락 나무도 보인다. 라일락 나무가 있어 벚꽃나무도 보인다. 벚꽃나무가 지면 라일락과 철쭉의 향기가 온 단지를 덮을 것이다.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나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일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20대를 어떻게 살았는지, 작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어제를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고 알 수 있어도 모두 비슷했던 10,20대의 그 나이가 아닌. 아직 불안한지, 멈춰있는지, 쉬고 있는지. 모든 것이 보이는 나이가 온다. 그 속에서 나 또한 때로는 불안함에 휩싸이기도 하고, 내가 가졌지만 다른 사람들은 쉽게 가지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안도하기도 한다. 때로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고 그 속에서 열등감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요즘은 그런 감정이 더 많이 드는 때라 무언가 열심히 시도해 보곤 하는데, 생각만치 결과가 나오지 않아 낙심하던 때였다. 그런 마음으로 헬스장에 가니 자꾸만 눈앞이 흐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라일락 나무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있는 곳이 작은 화분이더라도. 내가 작은 골목에 있더라도. 벚꽃에 가려져 뒷골목에서 간판 사이에 꽃을 피워야 하는 나무라하더라도. 모두 예쁘다. 똑같이 소중하다. 모두 행복이다. 언젠가 나도 더 큰 화분으로, 더 높은 간판을 가려서 올라갈 것이다. 화분에 라일락 나무를 심어둔 누군가가 '이제 많이 컸네, 마당에 심어야겠어.'라고 말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