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의 시간이 열렸다.
우리 집에는 거실부터 안방까지를 잇는 기다란 베란다가 있다. 늦가을에 이사 와서 아직 개장하지 못하고 꾸며만 놓았던 곳이었다. 가끔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개장은 하지 못한 상태였다. 겨우내 밝은 햇살에 빨래를 널어놓는 정도로만 사용했다. 그리고 올해, 이 집에서 처음 맞는 봄. 남향인 우리 집은 베란다에 가장 먼저 봄이 온다. 겨울 동안 거실 안까지 들어오던 밝은 햇살이 여름으로 흐르면서 점점 거실을 남기고 베란다에만 머문다. 여름엔 특히나 거실은 시원하고 베란다는 따뜻할 예정이다. 봄날을 기다리며 베란다에는 예쁜 선반장과 화분들을 놔두었고 타일도 깔고 테이블과 의자도 놔두었다. 타일로 가리지 못하는 부분은 타일과 색을 맞춘 자갈을 깔아 화분과 함께 꾸며두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베란다 공원이 드디어 개장했다.
개장은 우리 집 강아지, 우동이가 첫 손님으로 문을 열었다. 베란다의 창문을 열어놓아도 난방기기가 돌아가지 않게 되던 날씨의 날이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도 없겠다, 상쾌한 바람을 맞자며 베란다 문을 열어두었더니 바로 나가서 엉덩이를 붙였다. 베란다로 적당히 들어오는 햇빛에 몸을 뉘어서 눈을 가만히 감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베란다 문턱에 앉아 바라보았다. 그의 휴식시간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옆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았다. 햇빛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동이는 겨울 내내 거실에 들어오는 햇빛을 발견하고 이른바 '햇빛 구역'에만 누워있었는데 따뜻해지면서 그 햇빛 구역을 찾지 못해 종종 방석 위에서 햇빛을 대신하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베란다의 알차고 꽉 찬 햇빛을 누리고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뿌듯했다. 누울 수 있게 타일을 깔아놓은 우리가 참 잘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종종 우리 가족은 모두 베란다에 앉아 햇빛을 쬐는 시간을 늘려갔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가끔은 둘이, 가끔은 셋이 베란다 바닥에 앉아 햇빛을 맞는 일광욕을 즐겼다.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테이블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널어둔 빨래의 향기를 맡기도 하면서. 햇빛을 받는 것만큼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느낀다. 가끔은 피크닉을 하는 것처럼 담요를 깔아 두고 다 같이 앉아 간식을 먹기도 한다. 베란다 창문에 핸드폰을 걸쳐두고 음악을 틀어두고 누워있기도 한다. 역시 공원에서는 피크닉이지!
베란다 공원이 개장되고 나서부터는 이상하게 집에서의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베란다가 열렸을 뿐인데 나에게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로는 티브이시청시간이 줄었다. 베란다에 앉아있을 때는 거실 티브이가 보이는 구조가 아니라서 티브이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햇빛 아래에서 대화를 하는 시간이 더 늘었다. 우동이를 쓰다듬고 햇빛에 눈이 부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지내는 따뜻한 시간이 늘어난다. 티브이소리 대신 바람소리를 듣고 티브이 화면 대신 눈의 온도를 나눈다. 역시 도시 안에는 공원이 필요하다. 우리 집에도 공원이 필요하다.
두 번째 변화는 음료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베란다에 앉아있으면 뭔가 여유가 있어져서 인지 손에 무언가 들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화이트 와인을, 하루는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앉아있기도 했다. 카페에도 관심이 없고 딱히 물이 아니면 마실 것에도 관심이 없던 내가 카페에서보다 열심히 마실 것을 고른다. 집에 음료수도 여러 개 사두었다. 여기저기에서 보았던 홈카페 레시피들도 해보기 시작했다. 퍽퍽한 일상 속에 베란다 공원 덕에 뭔가 새로운 햇빛이 생겼다.
도시 안에 공원이 있으면 도시남녀들의 삶이 한 층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우리 집안에도 공원이 생기니 우리 가족의 삶이 한 층 부드러워졌다. 늦은 가을까지, 거실에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겨울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 집 공원은 계속 열려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