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일반적인 호주 여행기 #1
필자는 여행을 특별하게, 특이한 스타일로,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하는 편이 아닙니다.
신선하고 특별한 여행기를 적는 것이 아닌, 지극히 일반적인 보통의 여행 중 느꼈던 점들을 적습니다.
호주 여행은 신혼여행으로 일주일 정도를 다녀왔다. 뉴질랜드에서의 캠퍼밴을 앞두고 다녀온 거라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가치관을 바꿔준 대단한 여행이 되었다.
호주에서 가장 먼저 간 도시는 시드니였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천장까지 닿는 호텔 방의 큰 창문으로 하버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가 푸른 바다 위에 보였다. 도시에서 바다가 보이는데도 마치 호수가 보이는 것처럼 짜지 않고 눅눅하지 않은 도시의 느낌이었다.
길거리를 거니는 데 가장 놀란 건 낮 시간인데도 카페가 문을 닫았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한창 커피가 당길 시간인데 호주 사람들은 이 시간에 커피를 먹지 않는다는 것인가? 찾아둔 카페들을 모두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낙심하던 찰나 젤라또 가게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상택시 선착장이 있는 곳이었는데 주변이 거닐기에도 좋았고 앉을 곳이 많아서 바로 찾아갔다. 어김없이 가장 좋아하는 피스타치오 젤라또를 먹으며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앉자마자 이국적이라고 느꼈던 풍경은 수상택시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오피스룩의 옷차림과 요트는 생각해보지 못한 조합이었는데 둘이 함께 하는 풍경이 꽤나 색다르게 느껴졌다. 도시가 휴양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직 첫째 날인데 벌써부터 시드니의 매력을 느껴버렸다. 큰 건물들이 있는 거리들 사이에 성실하게 숨어있는 물과 공원이 나를 숨 쉬게 했다. 이곳에서 수상택시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그런 기분을 느낄까? 어쩌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것을 새롭게 느끼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 기분은 몇몇 나라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신선함일 것이다.
정장을 입고 수상택시를 타는 사람과 겹쳐 보인 것은 러닝 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만의 속도대로 열심히 걷고 뛰는 사람들이 기특했다. 하루 중 상쾌한 숨을 들이쉬는 시간들이 얼마나 있던가. 내가 만들어 낸 벅차고 차가운 숨을 심장 가득 뛰게 만드는 순간들이 얼마나 있었지. 지금은 차갑고 달달한 젤라또가 몸속 가득히 퍼지는 중이다.
다음 날부터는 일찍 닫는 카페에 익숙해져 미리미리 카페를 찾아다녔다. 일찍 닫는 대신 아침 일찍 여는 카페들이 많아서 나도 자연히 부지런해졌다. 일찍 일어나 호텔을 나와서 라테를 샀다. 이른 아침에 여는 카페를 여는 사람은 몇 시에 집에서 나왔을까. 여행자인 나도 부지런하게 만드는 호주는 과연 어떤 곳일까. 라테를 손에 들고 아침에 여는 식당을 기다리면서 자연히 거리를 걸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모두 카페에서 구매한 커피를 들고 있다. 한 손에 샌드위치나 베이글을 든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카페에 가도 정장차림이나 캐주얼 오피스 룩으로 커피와 함께 무언가를 먹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느끼던 출근길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바쁘고 피곤한 기운이 가득한 삭막한 출근길이 아닌 상쾌하고 부지런한 아침의 느낌이었다. 이 기분이 너무 신기해서 좀 알아봤더니 호주는 '브렉퍼스트 컬처'가 발달되어 있다고 했다.(브렉퍼스트를 줄여서 브레키라고 한다고.) 출근 전에 커피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피곤함을 누르고 대충 씻고 나가기에 바쁜 출근길만 겪어봤는데, 아침에 카페에서 여유를 느끼는 출근길이라니. 이런 기분으로 출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일하기 전 일찍 일어나 카페에 들러보겠다고 다짐한다. 여행지에서 겪는 느낌이란 게 바로 이것 아닐까? 모두가 일상인 이곳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순간의 매력. 왠지 가고 싶지 않던 회사도 이곳에서는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매력.
커피를 3-4시만 되어도 못 마신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도 모르게 커피 한 잔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밤이면 마시지 못할 라테를 지금 제일 잘 어울리는 빵과 함께 인생 최고로 맛있게 마셔보겠다고 다짐한다. 자연스럽게 아침에 일어나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게 된다. 고심해서 빵을 고르고 때로는 브런치를 시켜 커피와 먹는다. 그 아침을 오전 8시에 먹게 된다. 여행지에서 일찍 일어나는 것조차도 피곤함이 아닌 설레는 여행의 한구석이 된다.
카페에 들어가 있었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지만, 그보다 더 황홀한 여행의 순간이었다. 더운 날씨에도 바깥에 나가 햇빛을 쐬게 만드는 낮에 닫는 카페들. 카페 의자보다 벤치를 찾게 만드는 낮에 닫는 카페들. 부지런히 일어나서 맛있는 샌드위치를 고르며 하루를 기대하게 만드는 일찍 여는 카페들. 높은 도심 빌딩들 속 작은 표지판을 찾아 들어가면 빌딩 사이에서 마중하는 일찍 여는 카페들. 그리고 그 속에 서있는 출근길 작은 여유들.
하지만 카페에서 놀란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