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
살다 보면 문득 ‘어느 순간,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말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면서도, 그냥 그 시절의 나를 한번 꼭 안아주고 싶은 그런 마음. 나에게는 그런 시절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영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그저 영어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절학기 수업을 듣기 위해 무작정 영국으로 날아갔다. 그때의 나는 자유 그 자체였다.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입고 먹고 생활하던 날들. 첫 자취의 시작이기도 했기에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지만, 또 반대로 기분 좋은 낯섦이었다. 정말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자랑스러웠고, 꿈에 그리던 나라에서 학생으로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하루 자존감이 충전됐다.
두 번째는, 초등학생 시절이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 시절 내가 참 많이 웃고 행복했다는 건 몸이 기억하고 있다.
나는 노원구에 살았고, 중계역과 노원역 사이 어딘가가 나의 생활 반경이었다. 노원은 알고 보면 참 잘 짜인 동네다. 커다란 아파트 단지와 넉넉한 공원들, 군데군데 놀이터와 벤치가 이어진 풍경. 그곳은 마치 ‘공원 안에 아파트가 지어진 동네’ 같았다.
늘 누군가가 놀고 있고,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학원 가는 길, 소시지를 손에 들고 앉아있던 아이들도 있었고.
그 모든 풍경이 내 어린 시절의 평온함을 닮아 있었다.
성인이 되고도 꽤 오랫동안 그 동네에 살았다. 가끔 과제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복도에서 보이던 맞은편 아파트 불빛들이 이상하리만치 위로가 되곤 했다. 여름밤엔 창문으로 들어오는 초등학교 종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마음을 간질였다.
지칠 때마다 생각난다. 그 동네에 가고 싶다.
바쁘고 마음이 복잡할 때면, 노원 어느 단지의 벤치에 앉아 하늘과 나무를 올려다보고 싶다.
남편은 노원이 고향은 아니지만, 나와 함께 그 동네를 여러 번 걸었다. 신기하게도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그는 그곳에 갈 때마다 “여긴 힐링 플레이스야”라며 먼저 가자고 말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이라는 말이 단순한 지명일 수 있지만, 나에게 노원은 조금 다른 의미다. 핸드폰 충전기처럼, 내 감정과 기운이 떨어졌을 때 찾아가면 다시 조금 채워지는, 그런 무선충전기 같은 공간. 그 동네에 가면 아직도 내가 좋아하던 치킨집이 그대로 있고, 친구들과 걷던 거리와 놀이터도 여전하다.
그 시절 언니 오빠들이 앉아 있던 벤치에 나도 앉아, 지금의 초등학생들을 바라본다. 그러면 그 사이 어딘가에 그때의 내가 있는 것 같아 괜히 웃음이 난다.
여행이 늘 새로운 곳을 향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익숙한 거리, 오래된 풍경이 마음을 더 깊이 어루만진다.
그런 여행이, 어쩌면 진짜 ‘휴식’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