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개발자 사이 유일한 여자 디자이너

'여자'이고 '디자이너'라서 겪게 되는 일들

by 사치스러운글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은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이 장단점이 아주 뚜렷한 곳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부분일 것이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의 기업인 경우 인원도 많지 않다. 지금 내가 ux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 곳에는 대표님을 포함해서 나를 제외한 인원이 모두 '남자 개발자'이다. 남초 회사에 다니고 있는 유일한 디자이너이자 여자인 내가 이곳에서 겪게 되었던 불편했던 점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개발자 사이의 유일한 디자이너'에서 오는 불편함


회사에서는 보통 3-4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나는 그중 유지보수를 제외하고 2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갑작스럽게 중간에 합류하게 된 프로젝트. 평화롭던 나의 스케줄에 돌이 던져진 것은 바로 얼마 전이었다. 나의 커리어를 생각했을 때 욕심나던 프로젝트였던 건 맞았지만 바쁜 업무 속에서 디자이너에 대한 존중은 점점 사라져 갔다. 자기 업무와 데드라인이 있는데 어느 누가 남을 챙기겠냐만은, 대표님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디자이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개발자 대표님'은 나를 실망시켰다. 개발자 위주의 작업과 프로세스, 데드라인은 중간에 끼인 디자이너인 나로 하여금 엄청난 스케줄 압박을 만들어냈다. 에이전시에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한 일이었지만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일에 아무 방어막도 없이 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하루 종일 속이 답답하기도 했다.


이 전 포스팅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사수가 없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ux디자이너로써는 신입인 내가 사수 없이 그것도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의 부담감은 상상하던 것보다 좋지 않았다. 나와 함께 입사한 개발자 동기가 옆자리에서 사수에게 교육을 듣고 있는 걸 보면 한없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나도 이렇게 어렵고 힘들 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곳에서 내가 무언가를 온전히 배울 수는 있을까?




두 번째. '남자들 사이의 유일한 여자'에서 오는 불편함


입사 초기에는 유일한 여자라는 점이 어느 정도 편하게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여자 위주의 회사에 있었을 때의 그 집단과 무리에서 오는 루머들, 지나친 관심으로 인한 가십들에 지쳐있었으니까. 하지만 남자들은 그런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다. 실제로 회사분들은 모두 친절했고 생각보다 무신경했으며 쿨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빨리 먹는다는 부분이라던가, 상대를 생각하는 말을 할 줄 모른다던가. 하지만 그런 부분에는 금방 적응하는 것이 가능했다. 문제는 '여자'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한 개발자분의 퇴사로 신입 개발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력서가 들어온 여러 사람들을 얘기하다가 나는 여자 개발자가 들어오면 좋겠다는 말을 꺼냈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여자 개발자는 안 뽑아요.'라는 말이었다. 이유를 물어봤을 때 돌아왔던 답변은 '여자는 야근을 안 하잖아요.'라는 말이었다. 여자는 야근을 안 한다는 말이 어디서 나오게 된 것일까. 대표님은 우리 회사가 결과적으로는 '야근을 안 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야근을 안 하는 여자는 뽑기 어렵다라... 물론 성별이 달라 통하지 못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남자들 사이의 의리의 야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뽑지 못한다는 말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는 주로 야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근은 의리도, 책임감의 상징도, 성실함의 지표도 아니다. 주어진 업무시간 내에 본인의 업무를 다 끝낼 수 있는 것이 능력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야근을 하는 것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본인은 참고로 칼퇴를 하면서도 데드라인을 넘겨본 적도, 업무를 끝내지 못한 채로 넘긴 적도 없다.)




현재 나는 크게 보면 이 두 가지의 어려움을 회사에서 겪고 있다.

하지만 물론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고 뿌듯한 감정이 더 크다. 그것이 이 회사에서 내가 몇 년간 머물러있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일에 대한 재미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걸 알아채자마자 퇴사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언제까지 이 일에 대한 열정으로 이 곳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감수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나에게 바로 이런 이상한 불편함 들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성별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개발자 사이에서 일하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조금이나마 편해졌으면 좋겠다. 일에 대한 열정은 일하는 곳이 불편해지는 순간부터 조금씩 없어지기 마련이니까, 나의 일에 대한 열정을 위해서라도 한 발 한 발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나아가자.



epilogue) 회사 생활에 대한 매거진이지만 ux디자이너가 되는데 궁금했던 점이나 회사생활에서 궁금했던 소재들을 댓글이나 메시지로 남겨주시면 중간중간 적을 예정입니다. 궁금한 점들 많이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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