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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연 Jul 01. 2020

코로나 때문에 독립한 사연

[책장여행] 시작

이제는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었지만 나는 우리 회사의 재택근무 1호자였다.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이 되기 직전 고향인 대구에 다녀오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재택근무를 권고받았던 것이다.

평소 이 정도 긴 자유 시간(?)이 있다면 대구에 있는 부모님댁에 가있었을 텐데, 그곳은 당분간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카페에라도 가서 일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확진자로 판명이 나, 기껏 집에 보내 놨더니 밖에 싸돌아 다녔다며 욕을 먹을까 봐 겁났다. 재택근무와 자가격리의 차이가 헷갈려 퇴근 시간 후 나가도 될까 고민이 되던 모임들도 내가 먼저 결정을 하기도 전에 줄줄이 다 취소되었다. 꼼짝없이 일주일 동안 좁은 원룸에 혼자 갇혀 있어야 했다.

예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서울 자취집은 워낙 열악해 평소에도 깨어서 서너 시간 이상은 있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평소 업무에 더해 런던 출장을 준비하고 있던 참이라 일이 바빠 환경을 탓하거나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순진하게 갈 수 있다 믿고 비행기표와 호텔을 예약하고 관계자들과 미팅을 잡는 동안, 직원의 안전을 고려한 선제적인 회사의 판단으로 출장은 취소되었다. (출장을 한 달 여 앞둔 당시에는 취소할 것까지 있나 싶었는데, 원래 출장을 떠났어야 할 3월이 되자 한국보다 유럽과 미국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화장품과 갖가지 소품으로 가득한 테이블 위 물건들을 밀어내고 노트북을 올려놓을 공간을 만들었다가 끼니때마다 다시 치우고 음식을 담은 그릇을 둘 공간을 만들었다. 취사 시설이 마땅치 않아 전기밥솥으로 밥만 하고 즉석조리제품 반찬을 데워 먹었다. 저녁 약속과 주말 약속이 모두 취소되어 만날 사람도, 갈만한 장소도 없었다. 삶이 팍팍해지는 느낌이었다.

평소에도 짐을 부려놓고 잠만 자는 곳, 더 나은 삶을 살기 전에 임시로 지내는 곳이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하루의 대부분을 밖에서 지내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평일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회사에 있고,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두세 시간 정도 있다 오면 금방 잘 시간이고, 주말에는 다른 동네나 도시로 약속을 잡고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일시적이고 상업적인 공간에 기댈 수 없었다. "사람답게 살만한" 조금 더 쾌적한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바쁜 스케줄로 미뤄왔던 이사를 이번에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이사를 한 지 거의 3개월이 되어간다. 운이 좋게도 예산을 초과하지 않는 금액으로 넓고 깨끗한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몸만 들어가는 대신 예전 세입자들이 쓰던 가구를 그대로 쓰는 옵션이 갖춰진 원룸이 아니라 빌라라서 런지 처음으로 자취가 아니라 독립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넓은 집을 내가 직접 가전가구를 구입해 채워야 한다는 부담이 되긴 했지만 화장대, 식탁, 책상이 차례차례 들어오면서 이제 더 이상 한 테이블에서 모든 걸 해결하지 않아도 되고, 오랜 시간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데 감격했다. 책상 옆 책장에는 부모님댁, 직장, 학교, 친구집 등 곳곳에 흩어져 있던 책을 모아 왔다. 머릿속까지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여행을 자제하느라 북스테이를 거의 하지 못해 작년에 다녀온 곳들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었다. 원래 열악한 주거 환경 때문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의 작업을 할 공간이 없어서 북스테이를 시작했더랬다. 당분간은 물리적으로 멀리 떠날 수는 없겠지만 집에서 한동안 잊고 지냈책들을 펼쳐 사유하고 공상하는 것도 여행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북스테이는 계속된다.


*이사집 공개 유튜브 보러 가기:

https://youtu.be/Ugjc1k4MK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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