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주연 Sep 30. 2020

집에서 하는 소셜 다이닝

[책장여행] feat. 외롭지 않을 권리

이사를 한 뒤 집순이가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나가기 꺼려지는 데다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한 후로는 그 공간을 안락하게 꾸려가는 데 집중을 했다. 이때까지 사는 공간이 열악해서 밖을 헤맸을 뿐 본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성격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답답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언제 끝날지, 그리고 이제껏 알던 세계의 토대가 무너졌기에 그 끝에는 어떤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불확실성에 막막하고 우울한 마음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1인 가구라 특히 심하게 다가왔는지도 몰랐다.


그때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 1인 가구 커뮤니티 센터에서 랜선 소셜 다이닝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신청하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화상 회의로 만나 함께 요리하고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신청한 날은 오디블루베리잼과 레몬청을 만드는 날로, 전날 재료를 집 앞까지 배달해주었다. 키트를 열자 기본적인 재료뿐만이 아니라 잼과 청을 담을 유리병, 그리고 1인 가구라 구비하고 있지 않을까 봐 레몬을 씻을 식초, 소금, 베이킹소다까지 챙겨주어 감동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화상 회의에 접속하자 사회자와 요리 선생님이 조리법을 차례차례 알려주었다. 그리고 완성된 요리를 먹으며 간단히 얘기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내었을 어려운 요리로 비타민 충전을 한 것은 물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요즘 랜선으로나마 수다를 떨 수 있어 우울감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강남 1인 가구 커뮤니티 센터는 올해 초 개관 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다. 황두영의 『외롭지 않을 권리』 북토크에 다녀온 것이다. "외롭지 않을 권리"라는 제목이 재밌다고 생각을 했고, 말랑말랑한 이야기겠거니 했다. 하지만 진선미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한 저자가 기획한 생활동반자법의 내용과 입법 필요성을 설명하는 진지한 자리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부장적인 전통 가족에 대한 반발로 비혼을 생각해왔다. 하지만 스스로 돈을 벌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지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후는 어떡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족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뿐 막연하게 마음 맞는 파트너와의 생활을 꿈꾸기는 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에 대해서도 역시 생각해보지 못했다.


책에서 여러 사례--사실혼 관계였던 아내가 죽었는데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은 장례를 치를 수도 없고 아내는 무연고자로 처리된다든가, 친구끼리 같이 살다가 경제를 담당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죽고 나타난 먼 가족 때문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거나--를 접하면서 결혼 또는 성애적 이성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도, 삶의 형태도 바뀌어가고 있는데 가족에게 모든 생계와 돌봄을 부담시키고 전통 가족 밖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 같다. 생활동반자법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맞서 저자는 이 법이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복지 부담도 줄이는 등 사회에도 좋은 법이라고 주장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청년 1인 가구에 대해 얘기할 때 공감 갔던 것은 이들이 자산을 일구기까지 주민등록상 세대분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통계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청년의 불안정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도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한 지 7년이지만, 전셋집이나마 얻어 서울로 주소를 옮긴 건 3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열악한 생활환경 때문에 밖을 떠돌면서도 그게 사회 문제라고 의식하지 못했다. 단지 내가 지금을 희생하고 노력해서 성공하면 해결할 수 있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걸 알겠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가 편하고,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겨우 얻었음에도 이런 커뮤니티 센터의 소식에 계속해서 귀 기울이는 것일 테다. 막연한 연대를 넘어 당연한 권리의 법적 보장을 위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탤 예정이다.


*소셜 다이닝 유튜브 보러 가기:


https://youtu.be/qU9kVuUlOTE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때문에 독립한 사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