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메랄다호의 출항
처음부터 눈부신 진보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초창기의 우주는 황량했고, 외롭고, 기대보다 훨씬 멀었다.
마치 15세기 포르투갈이 지브롤터에서 지중해를 빠져 나가 아프리카 북부에서 서해안을 조심스레 남하하며 수세기 동안 겨우 희망의 바늘을 놓았듯이, 인류 역시 지구 궤도를 벗어나는 데에는 무수한 시간과 우주먼지의 침묵이 필요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책에서 읽었다.
"토끼가 달에서 방아를 찧는다", "성운을 배경으로 우주선이 유영한다"는 이야기를.
그런 상상은 허무맹랑한 전설이었고, SF영화나 애니메이션, 낡은 책의 한 구절로만 존재했었지만, 그 비현실이 하나씩, 현실의 문을 두드리며 등장하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
1957년, 스푸트니크 1호.
소련이 발사한 이 작은 인공위성은 삐걱거리는 라디오 신호로 인류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12년 뒤엔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디뎠고, 그의 발밑에 있던 고요한 먼지가 영영 사라지지 않을 인류의 흔적으로 남았다.
그 뒤를 이어 출발한 보이저 1호와 2호는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공간을 유영하고 있다.
그 누구도 그들이 이렇게 오래 버틸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1977년, 인류는 두 개의 작은 탐사선을 발사했다. 이름하여 보이저 1호와 2호.
‘여행자’라는 이름처럼, 그들은 돌아올 계획이 없는 편도 티켓을 쥔 존재들이었다.
당초 계획은 목성, 토성 등 외행성 탐사가 전부였다.
그러나 NASA는 그들 안에 더 많은 가능성을 담았다.
카를 세이건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탐사선에 골든 레코드라는 황금빛 음반을 실었다.
음반 안에는 수십 개 언어로 녹음된 인사, 지구의 자연 소리, 바흐와 모차르트, 그리고 전 세계의 민속 음악까지.
그건 누군가에게 ‘우리는 이런 존재입니다’라고 말하는 유리병 속 편지였다.
혹시 모를 미래의 타자에게, 혹은 잊혀질 뻔한 과거의 우리 자신에게.
보이저 2호는 먼저 떠났다.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까지, 네 개의 거대 행성을 전례 없이 자세히 찍고,
인류가 한 번도 본 적 없던 위성들과 고리를 포착해냈다.
해왕성의 푸른 대기와 암흑 속 소용돌이는 ‘우주적 고독’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보이저 1호는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경유하며 다른 궤도로 진입했고,
1980년대 말엔 어느새 태양계를 벗어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1990년,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마지막 한 컷을 남겼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60억 km 너머에서 바라본 지구.
마치 햇빛에 스친 먼지처럼, 작디작은 푸른 점 하나.
그 위에서 수천 년의 전쟁이 일어났고, 수억의 사랑이 피어났고, 모든 종교와 철학이 쌓였다.
그러나 우주에서는 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작고 연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이후 보이저들은 성간 공간으로 접어들었다.
2012년, 보이저 1호는 최초로 태양권계면(heliopause)을 넘어 성간 우주에 진입한 인류 최초의 기계가 되었다.
보이저 2호도 2018년에 그 뒤를 따랐다.
이제 그들은 지구와의 교신조차 어렵고 불확실한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아직도 느릿하게 데이터를 전송하고 있으며,
그 데이터는 태양계의 경계, 성간 플라즈마의 밀도,
그리고 우주가 얼마나 넓고 낯선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단서가 되고 있다.
보이저는 인간처럼 숨을 쉬지도, 방향을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명령을 따라 끝없이 전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문이 담겨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혼자인가?”
보이저의 여정은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그 질문이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 있는지를 시간과 거리로 증명해주는 사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