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혼란

에스메랄다호의 출항

by 김주영

2031년 4월, 김정은이 평양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다.

권력승계나 장례 절차에 대한 아무런 발표도 없이, 국영방송은 이틀간 정지되었다.

한밤중에 개성에서 발포가 시작됐고, 곧이어 황해도 일대의 군부대가 평양으로 진군했다.

그렇게 북한 정권은 예고 없이 붕괴했고,

남한 정부는 혼란에 빠졌다. 통일부와 군부는 서로 다른 시나리오를 주장하며 마비됐다.

혼란은 순식간에 기회가 되었다.


일본은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으로 함경북도 해안에 해상기지를 설치했고,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조선족 무장민병대를 이끌고 나진-청진 라인을 장악했으며,

2030년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만주국은 이미 비공식 경로로 접경지대를 사들여 국경마을을 요새화하고 있었다.

국제사회는 이 사태를 ‘한반도 다자간 관리’의 기회로 포장했지만, 현실은 외세와 지역 세력 간의 ‘하이브리드 전쟁’이었다.

한반도 내부는 더 지독했다.

남한 정권은 통일 명분을 앞세워 북진하려 했지만, 이 상태에서 합하면 다 죽는다라고 외치는 남한 내 통일 반대 세력과 보수 군벌의 방해로 내부부터 삐걱였다.

북한 군부는 김정은 사망 직후부터 각 지역부터 군벌화되었고, 일부 장성들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자치권을 요구했다.

남한 내 좌파 활동가들과 일부 시민단체는 '군사적 통일 반대'를 외치며 반정부 봉기를 일으켰고, 급기야 서울 일부 구역이 봉쇄되고, 주요 통신망이 정부와 분리된 ‘자치 인트라넷’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더 이상 하나의 국가는 아니었다.

깃발만 수십 개, 정권은 여럿, 도시마다 다른 법과 언어가 섞였다.

‘통일 한국’이 실현되기는커녕, 해체 중인 국가로 전락했다.

어쨌든, 2033년 국제사회가 조율한 ‘한민족 연방국’ 체제가 공식 발표되었다.

남한과 붕괴된 북한 군부 일부, 일부 지방정부들이 모여 ‘남북연방국 헌장’을 채택했다.

서울과 평양을 각각 행정수도(남연방)와 상징수도(북연방)로 지정하고, 경제는 서울, 군사권은 연방국 국방위원회, 외교는 공동협의체가 맡기로 했다.

이론상으론 남북의 힘을 절묘하게 나눈 완벽한 정치공학적 설계였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달랐다.


북한 지역은 군벌들 간의 실질적 분할 통치 상태에 놓였다.
평양은 이름뿐인 정부청사만 남았고, 청진과 원산은 각각 러시아와 만주국(중국계 민간군사기업)의 영향 아래 있었다.

남한 내부도 불안정했다.
서울, 인천, 대전은 친연방 정부가 장악했지만, 부산, 대구, 포항 등 동남권은 '통일 거부 지자체 연합'을 표방하며 연방정부와 갈등했다. 그들은 “자율적 개별경제권 보장”이라는 명분 아래 연방세를 내지 않고 자체 통화 실험을 벌이기도 했다.

한반도 남중부의 농촌 지역은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다.
중앙정부도, 군벌도 다 포기한 곳이었다.
수많은 난민, 불법이민자, 자경단, 종교단체, 생존공동체들이 뒤섞인 그곳은 사실상 '정치적 블랙홀'로 불렸다.

군은 여전히 국군과 북부군이 병존했으며, 실질적 지휘권은 각 군벌의 손에 있었다.
같은 연방군기 아래 있지만 작전계획도, 교범도, 군번체계조차 달랐다.

통일 직후 전국에 퍼졌던 ‘남북 화해’ 분위기는 1년도 채 가지 않았다.
평양 청년이 서울에서 린치를 당하고, 서울 지하철에선 ‘북부 사투리 금지’ 스티커가 붙었으며,
탈북 군인과 남한 시민이 시장에서 서로 총격을 벌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외국계 자본은 연방체제의 허점을 이용해 '경제 특별구'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식민지화를 진행했다.
인천항은 일본계 기업이, 평안남도 일대는 러시아 민간군사기업이 통제하고 있었다.

이렇게 2035년 현재, 한반도는 겉보기엔 ‘하나의 연방국’이다.

하지만 누구도 진심으로 ‘하나의 나라’라고 믿지 않았다.

이 시기 타임지는 한반도를 이렇게 조롱했다.

"두 개의 태양, 백 개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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