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앙 신부와 마리(2)

우주선 에스메랄다호의 사람들

by 김주영

마리의 딸 클라라는 타이탄의 붕괴 직전 광산 식민지에서 태어났다. 마리는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너는 언젠가 인류의 새로운 천년의 땅인 그 약속의 땅을 인도하게 될 거야.”

클라라가 태어난 뒤, 마리는 타이탄의 외곽 거주구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광산 식민지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고립과 결핍, 인간 사이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 그녀는 타이탄의 차가운 밤하늘 아래에서 점점 말이 없어졌고, 하루하루 침묵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는 구조신호 하나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신호는 규격 외 채널로 짧고 단순했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구조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절망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마리는 어느 순간, 우주와 신 사이의 경계에서 무언가를 본 것이었다. 그녀는 신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이 신의 침묵이 닿는 자리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신성의 일환’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클라라를 더 나은 곳으로 보내기 위한 장치를 조용히 준비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방사능 지대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일부는 그녀가 죽었다고, 또 일부는 살아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를 아는 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이라고.

리옹으로 돌아온 앙투앙은 마리의 실종에 대한 보고서를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이 여전히 그녀의 말을 반복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신이 별빛 사이에 있다고 믿어요. 단지 기도문 안에는 없을지도 모르죠.”

앙투앙은 마치 그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입 안에서 천천히 되뇌었다.

그 후, 그는 수도복을 완전히 벗고, 티베트 불교 수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불교가 말하는 ‘공(空)’과 ‘윤회’, 그리고 우주적 무아의 개념은 그가 느낀 마리의 침묵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는 언젠가 타이탄에 가리라 다짐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침묵을,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갈 아이의 흔적을 따라가기 위해.


김기철은 서울의 변두리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한때 정치운동을 했고, 지금은 지하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무정부주의자였다.

몇 해 전, 그는 수도권 개발 반대 시위를 조직하다가 함께하던 동료에게 밀고당했다. 새벽에 들이닥친 특수부대가 그를 체포해갔고, 그날 이후로 그는 누구도 완전히 믿지 않게 되었다.

그는 옥중에서 기술을 익혔다. 전기 회로, 배관, 드론 조종, 암호 해독. 세상과 단절된 감옥 속에서 그는 자신을 무기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사람은 부서져도 도구가 되면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풀려난 뒤 그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고,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는 법보다 스스로를 감추는 법을 배웠다. 그는 군중 속에서 연기하듯 살아갔고, 점점 자신의 감정조차 지워갔다.

정부의 통신 감시가 강화되자, 그는 몽골로 탈출해 비공식 화물 운송 네트워크에 합류했다. 생존에 필요한 건 무기보다 손재주였고, 그는 언제나 필요한 곳에 있었다. 폐수 필터를 수리하고, 파손된 드론을 고치며, 전투가 벌어지면 후방에서 부상자를 끌어냈다.

그는 옥중에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사이에서 우연히 마리 수녀의 책을 읽게 되었다.

『새 인류의 천년 왕국, 약속의 땅』그 책은 마리가 타이탄으로 향하기 직전에 쓴 유서와도 같은 글이다.

책은 기독교, 불교, 이슬람, 천문학, 생태학이 혼재된 기묘한 형식으로 쓰여 있었다.

“신은 언어 이전의 침묵 속에 있다. 인간이 찾는 '약속의 땅'은 공간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다.”

마리는 우주 이주 시대에 ‘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녀는 지구가 ‘폐허가 된 성지’라면, 외계 식민지는 ‘아직 언약되지 않은 광야’라 했다. 그리고 인류는 그 광야에서 다시 한번 윤리와 공동체를 발명해야 한다고 썼다.

기철은 처음엔 시큰둥했다. 그러나 며칠 뒤, 다시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약속의 땅은 분리된 자들을 다시 연결하기 위한 상징이다. 그것은 피난처이자, 심판이다.”

그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가 무너졌던 날, 그는 이런 문장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싸우고 도망치고 버텼지만, 그 속에 '다시 연결됨'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건 자신과 상관없는 언어 같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는 종종 마리라는 저자와 말없는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에 빠졌다.

책이 감옥의 벽보다 더 깊은 틈을 열고 있었다.

2032년, 그는 첫 우주계약을 얻었다. 행성 간 물자 운반 계약. 그 여정은 그를 토성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마리라는 여성이 구조신호를 남긴 채 실종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딸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는 무심하게 턱을 쓸어내렸다. “또 하나의 이야기겠지.”


그 누구도 몰랐다. 그때 태어난 아이가 훗날 우주선을 타고 ‘에스메랄다’에 오르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그 안에서 아버지와 딸, 그리고 낯선 남자, 세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게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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