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에스메랄다호의 사람들
2030년, 겨울. 리옹 근교의 낡은 수도원 마당에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미루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쓸리고 있었다. 앙투앙은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금욕적인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부터였다. 성당은 이제 더 이상 기도의 장소가 아니었다. 기업 후원자와의 협약, 전쟁 희생자를 위한 예배를 상업화한 기도 의식들, 그리고 예배 후 피정 프로그램의 수익 배분까지. "신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있군..." 앙투앙은 입 안에서 중얼거렸다.
그는 수도원의 업무를 내려놓고, 유럽 종교간 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우주선교 교류 프로그램에 자원한다. 이 프로그램은 인류가 우주 이주를 본격화함에 따라, 새로운 식민지에서의 종교적 공존과 영성 회복을 목표로 설계된 것이었다. 각 종단의 대표자들이 지구 외곽의 극한 환경 속에서 공동체 생활을 실험하며, 종교가 과학기술 시대에도 인간 존재의 중심에 남을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성격이었다. 목적지는 몽골의 유목 공동체. 그곳에서 그는 다양한 종교의 사제들과 함께 현지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그중 한 명이 바로 수녀 마리였다.
마리는 수도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외피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박사학위를 가진 천문학자였다. 신을 찾기보다는, 별을 읽으며 우주의 질서를 탐구하던 이였다. 앙투앙은 그녀의 말을 좋아했다. “나는 신이 별빛 사이에 있다고 믿어요. 단지 기도문 안에는 없을지도 모르죠.”
그들은 같은 천막 안에서 며칠을 지내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삶과 신념을 가진 두 사람은, 고요한 밤마다 마주 앉아 말없이 차를 마시거나, 낮에는 불을 피우며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앙투앙은 그녀가 천문 관측 장비를 다루는 손끝을 지켜보며 묘한 경외심을 느꼈고, 마리는 그의 오래된 묵상 노트를 슬쩍 들여다보곤 했다. 바깥은 영하 30도, 고요한 황무지에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몸을 녹이기 위해 붙은 불, 차마 넘지 말아야 할 선. 그러나 인간은 약한 존재였다. 둘은 말없이 서로의 온기를 나눴고, 다시 말없이 등을 돌렸다.
몇 달 후, 앙투앙은 수도복을 벗고 리옹을 떠났다. 그는 한동안 방황했다. 신에 대한 믿음은 더 이상 그를 붙잡지 못했고, 그는 정신적 피난처를 불교에서 찾기 시작했다. 우주의 윤회와 공空의 사상,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생멸하는 불교적 우주론은 마리와 나누었던 대화들과 이상하게도 조응했다. 그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선원에서 선불교 수행을 시작했고, 몇 해 후에는 정식으로 승려의 길을 걷게 되었다.
명상 중, 그는 자주 마리를 떠올렸다. 별빛 아래 차분히 이야기하던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손길, 그리고 그날 밤의 온기. 마리는 그에게 우주의 구조보다 더 복잡하고도 단순한 감정, 곧 연민과 사랑, 그리고 책임의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타이탄에서 전해진 오래된 구조신호 기록을 듣고, 그녀가 그곳에 갔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공空은 허무가 아니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는 자신의 수행 노트에 그렇게 적으며, 타이탄을 향한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불교의 우주관은 그에게 분리와 상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인연을 잇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앙투앙은 언젠가 마리의 흔적을 찾아, 그녀가 남긴 무언가를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마리는 자신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앙투앙이 리옹을 떠났을 때 알게 되었다. 그녀는 조용히 수도회를 그만두고, 태양계 밖으로 나가는 이주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그녀가 선택한 곳은 토성의 위성 타이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외로운 땅. 아이를 낳고 살아가기엔 위험했지만, 오히려 신의 침묵에 가까운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