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항사와 필립선장(2)

우주선 에스메랄다호의 사람들

by 김주영

오장환은 키 175cm, 체격은 단단하고 살집이 있는 편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그의 둥근 볼과 짙은 눈썹, 짧고 곱슬거리는 머리를 보고 ‘시골 청년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묘하게 순한 인상과 까칠한 태도를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다. 얼굴에 각진 곳이 없고 둥글고 하얀 얼굴은 보는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는 친근함이 있었다

항해사들이 대개 그렇듯 그 역시 감수성이 예민하고 섬세했다.

시를 쓰고, 클래식 레코드판을 모으며, 누군가 다치거나 울기라도 하면 며칠 동안 안타까워 했다.

결정 앞에서는 늘 고민했고, 부당한 명령 앞에선 언제나 눈을 질끈 감고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장환이 갓 승선했을 무렵, 갑작스러운 전자기 폭풍이 배를 덮쳤다.

모든 항법 시스템이 고장 났고, 선내는 혼란에 빠졌다.

당시 항해사였던 그는 조타실에 혼자 남아 종이 지도를 펼쳤고, 창 밖 별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수동 항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손은 덜덜 떨렸고, 실수 하나면 모두 우주에 날아갈 상황이었다.

그 순간 그는 통신이 끊긴 사운드룸으로 달려가, 오래된 피아노에 앉았다.

그리고 알프레드 브렌델이 연주한 슈베르트 <즉흥곡 90-3>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당황한 당시 일항사 필립은 무전으로 소리쳤다.

"실항사! 지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미쳤나?"

장환은 그저 대답했다.

“침착해지려구요. 그래야… 모두 살릴 수 있으니까요.”

놀랍게도 그의 손놀림은 점점 안정되었고, 피아노 소리와 함께 배는 천천히 균형을 되찾았다.

그날 이후 선원들은 그를 ‘감성적이지만 쓸모 있는 예민러’라고 불렀고, 필립은 내심 그를 ‘믿을 수 있는 방향타’라 불렀다.


2020년대 후반, 남한정부는 인구절벽에 맞서 생존을 택했다.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급진적인 이민정책을 도입했고, 단 5년 만에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계 이주민이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처음엔 일자리를, 이어서는 국적을, 끝내는 정체성을 놓고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출신과 피부색에 따라 입학 시험의 난이도가 달라졌고, 공공기관은 ‘다문화 포인트’를 내세운 평등주의와 생존주의 사이에서 표류했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외곽에는 국적 없는 3세대 아이들이 대거 태어났다.

그들은 한국어도 어눌하고, 조상 나라 말도 잊은 채, 무국적 학교와 다문화 사설 공동체에서 고립되었다.

오장환은 그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필리핀 출신의 언어 강사였고, 아버지는 조선족 출신의 전직 용접공이었다.

어릴 적 그는 '정통 한국계' 또래들에게서 ‘믹스 냄새 난다’는 놀림을 들었고, 구로구와 부천을 전전하다가, 중학교 시절 평택 다문화 특구 내 폐교를 개조한 ‘공용학교’에 배정됐다.

그곳에서 그는 우연히 도서관 귀퉁이에서 오장환 시인의 시집을 발견한다.

고향도 이름도 지워진 채 떠도는 언어들 속에서, 그는 “시”라는 언어만큼은 국경이 없다는 걸 처음 알게 된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의 정체를 설명하는 데 시인의 이름을 빌리기로 한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스스로를 ‘오장환’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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