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항사와 필립선장(1)

우주선 에스메랄다호의 사람들

by 김주영

지질 탐사 결과, 목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에서 망간 매장량이 가장 풍부한 곳은 리게니아 바다로 밝혀졌다.

필립 선장의 신호에 따라, 오희순 일항사는 조용히 주갑판에서 에어건을 투하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에어건이 압축 공기를 폭발시키자, 그 충격파가 문어발처럼 길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충격파는 다시 해저 지층에서 반사되어 돌아왔다.

탐사선은 그 반사 신호를 정밀하게 포착해 분석한다.

이 과정을 통해 비파괴 방식으로 타이탄 해저 지형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일항사, 신호 좋군. 90도로 20킬로 정침 후, 180도 선회하겠네."

브릿지에서 들려온 필립 선장의 목소리는 짧고 단호했다.

탐사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조사선은 격자 무늬를 따라 꼼꼼하게 항해하며 지형 정보를 수집 중이었다.

2035년 이래로, 화성과 몇몇 소행성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온 필립 선장과 오희순 일항사는 이번에도 임무를 완수할 각오로 타이탄에 도착했다.

목표는 광물 샘플의 확인, 그리고 대량 채취를 위한 정밀 사전 조사였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해저 충격파의 반사 신호가 점점 왜곡되기 시작했다.

선체 좌현에 설치된 스트리머들이 비정상적인 진동을 감지하며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삐—삐—삐삐—」

“선장님. 반사신호가 엉켜 있습니다. 4번 스트리머가 뒤틀렸습니다.”

희순이 빠르게 모니터를 스캔하며 말했다. 이마엔 땀이 맺혔다.

“뒤틀린 게 아니야, 일항사. 열수구 근처다.”

필립 선장은 곧바로 브릿지의 주조종석에 앉아 조타기 쪽으로 손을 뻗었다.

“우회한다. 나침각 135도, 수심은 유지. 3도 각도 틀어.”

“하지만, 선장님—”

“듣고 있어. 지금 그 길로 가면 스트리머 날아가고, 조사도 물 건너가.”

희순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이 노인은 언제나 이렇게 단호했다.

‘나 같으면 계속 직진했을 텐데···’

필립은 때로, 선주에게 휘둘리며 불합리한 임무를 강행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종종 선원들을 위해, 이익에 눈 먼 본사와 맞서기도 했다.

기록에 남지 않은 크고 작은 싸움들이 있었다.

크리스티나 박사도, 알렉스도, 모두 그걸 알고 있었다.

그는 똑똑한 리더가 아니라, 결국 ‘정의롭고 곧은 선장’이었다.

탐사선은 부드럽게 방향을 틀었다. 외벽을 타고 흐르던 열수의 잔재가 모니터에서 사라졌다.

긴장하던 스트리머의 수치도 평상시로 돌아왔다.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선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 예전엔 엔셀라두스에서도 탐사하지 않았나?”

“네. 그때는 수질 샘플 채취 담당이었습니다. 그쪽은··· 얼음 지층 위주였죠.”

“그럼 리게니아 같은 바다는 처음인가?”

“맞습니다. 이렇게 깊고, 변수가 많은 곳은 처음입니다.”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도 멈칫할 줄은 알아야 해.

탐사는 밀어붙이기보다, 물러설 타이밍을 아는 게 생명이지.”

희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 선장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전장을 누비던 노병처럼, 그는 이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제압했다.

오희순 일항사는 언제나처럼 필립 선장을 경외의 눈길로 대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판단, 대범함, 그리고 차분한 리더십.

험난한 곳일수록 리더쉽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원들은 리더쉽을 갈구하는 것이다.

어쨌든 필립 선장 그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다.

필립 선장은 한때 악명 높은 밀수 가문의 후계자였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그는 정직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가문과는 결이 달랐다.

밀수 선박 안에서 자라며 수십 개국 언어를 익혔고, 선원들 틈에서 땀과 먼지를 먹으며 배웠다.

그는 누구보다 바다를, 그리고 사람을 사랑했다.

한때는 해적이었고, 다시는 군인이 되었고, 지금은 탐사선을 모는 화물선 선장이다.

그의 이력은 기묘하게 얽히고 설켜 있다.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 단 하나, 그 안의 정의감만은 변치 않았다.

그를 진정한 외톨이로 만든 건,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치료법이 없는 희귀병에 걸렸고, 필립은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그 이후로 그는 더 단호해졌고, 더 고집스러워졌다.

회사는 그를 '위험 요소'로 분류했고, 조용히 퇴역시키려 했다.

이 탐사선은 STX-HORIZON II호, 무인과 유인이 혼합된 우주 탐사선이다.

브릿지는 전면 파노라마 디스플레이와 반구형 제어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장석 뒤편엔 작은 휴게 공간과 관측 데이터 실시간 분석실이 붙어 있다.

브릿지 안엔 세 명의 승무원이 더 있었다.

해양지질 전문가, 기계/에너지 시스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그리고 AI 인터페이스 '말루'

탐사선 운영용 반자율 인공지능인 말루의 목소리는 온화하고 여성적이었다.

“기온 안정화 중입니다. 해저 열류 변화율 ±1.2%. 현재 안전합니다.”

“고마워, 말루.” 필립이 대답했다.

필립은 브릿지를 빠져나오며 한 마디를 던졌다.

“일항사, 교대 후 쉬게. 피로는 판단력을 좀먹어.”

희순은 그 등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똑바로 섰다.

“예, 알겠습니다. 선장님.”

그의 내면에 묘한 떨림이 일었다.

그건 어쩌면, 오래된 경외심의 씨앗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필립이라는 사내가 과거에 무엇을 버리고 여기까지 왔는지를 떠올렸다.

고집스럽고,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이상주의자.

단단한 껍질 너머엔, 아직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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