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호와 기관사 (2)

우주선 에스메랄다호의 사람들

by 김주영

청하면, 작은 거리로 이어지는 물양장이 끝나는 곳.

낮에는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낡은 목조 건물이 있다.

외벽은 바닷바람에 벗겨지고 녹슬었지만,

밤만 되면 알전구가 깜빡이며 깨어나는 그 집—

"다루마야(ダルマ屋)" 선술집.

입구엔 큼지막한 나무 간판이 걸려 있다.

‘다루마’ 인형처럼 묵직하고 둔탁한 삶의 향기,

술기운에 떠들썩한 선원들과 용접공, 목수, 기관장,

그리고 마른 손등에 굳은살 박힌 여주인 ‘태자 할매’의

터프한 욕지거리가 밤의 오르골처럼 돌아간다.

"자식들아, 마시는 건 좋은데 싸우진 마라!

이번엔 술병 깨면 진짜로 그걸로 요절내 버린다!"

구석진 무대 위에는 마이크 하나, 조명 하나.

거기, 짙은 청색 작업복 위에 카키색 점퍼를 걸친 한 여자가 선다.

미즈호.

눈에 띄는 화장은 없다.

머리는 질끈 묶었고, 손은 아직도 기름 냄새가 묻어 있다.

그러나 그녀가 트럼펫을 드는 순간,

가게 안 공기가 바뀐다.

딸깍— 조명이 조금 더 밝아진다.

바다의 냄새, 녹슨 철의 향,

그리고 선술집의 웃음소리가

단번에 정지된다.

첫 음이 울려 퍼진다.

'Summertime' 혹은 모리야마 료코의 '눈물이 주룩주록(涙そうそう)'

어떤 밤은 빌리 홀리데이,

어떤 밤은 고향 생각에 젖어 그녀가 직접 작곡한 짧은 선율도 튄다.

그녀의 연주는 거칠다.

그러나 생생하다.

슬픔을 꾹 눌러 삼킨 소리.

바다를 오래 탄 손들이, 그 트럼펫 소리를 가장 잘 알아듣는다.

사람들은 미즈호가 연주할 때만큼은

술잔을 내려놓고, 가만히 숨을 고른다.

그녀는 말없이 관객들을 바라보다가,

트럼펫을 천천히 내리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술 한 잔을 받아들고,

단골 아저씨들과 욕설 섞인 건배를 나눈다.

그녀는 이 항구의 자랑이자 수수께끼다.


그는 한때 촉망받는 엔진 설계 엔지니어였다.

글로벌 엔진회사에 입사한 초기부터 경영진들의 인정을 받는 인물에 속했다.

모터와 터빈, 피스톤 하나까지 머릿속에서 조립할 수 있었고,

그의 손을 거친 설계는 늘 안정적이면서 효율적이었다.

선배들은 “놀라울 정도로 현장감각이 천성”이라 했고,

그 자신도 언젠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엔진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가 설계에 참여했던 중형 선박의 엔진에서 원인 불명의 폭발이 발생했다.

기록으로 남은 건 단순한 ‘기계적 결함’이었지만,

현장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이름은 그를 매일 덮쳤다.

책임소재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는 그를 조용히 내보냈고,업계 역시 입을 닫고 등을 돌렸다.

이후 그는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한 평짜리 방과 온라인 설계 도면 속에서 보냈다.

일을 구하려 애썼고, 무혐의임을 입증하려 백방으로 뛰었지만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의 판단, 자신의 손, 자신의 눈.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고,

자책은 그를 조금씩 말려 죽였다.

그는 수년간 방구석에만 은둔하였다. 그게 편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그를 구한 건 어머니였다.

남편을 일찍 잃고 혼자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온 그녀는,

어느 날 문득 가게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젠 네 밥 좀 해줘야겠다.

네가 부숴진 걸 내가 다 고칠 순 없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내 자식 밥은 지을 수 있어.”

그 말대로, 그녀는 몇 달 동안 매일 아침 그를 위해 밥을 지었다.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아 묵묵히 밥을 뜨는 어머니의 손끝은,

언제나 조용했지만 그보다 강한 위로는 없었다.

그는 그 시간들을 통해 다시 천천히,

세상의 온도와 마주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근처 철공소로 나가던 날,

그녀는 말없이 그의 작업복을 다려주었다.

단추를 잠그며 손끝으로 그에게 말해주었다.

“이제 너, 괜찮다.”

몇 번의 현장 경험 끝에 그는 깨달았다.

설계는 머리로만 하는 일이 아니었다.

쇠붙이 하나하나의 소리를 귀로 듣고,

온도를 손끝으로 느끼며, 구조를 몸으로 기억하는 일.

설계는 스스로 직접 만들어 보고 몇 번 실패할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착수해야만 한다.

예전의 자신에게는 그게 빠져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병은 이미 깊었고, 그녀는 더는 치료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다시 걸어 나간 걸 봤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녀는 그렇게 조용히,

아들이 다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순간을 지켜보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울지 않았다. 울지 못했다.

그 대신 그는, 다시 일어섰다.

어머니가 다려주던 작업복을 입고, 손에 기름을 묻히며, 한 번 더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미즈호를 만났을 때, 그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겐 한 번 무너졌던 세계에서 다시 기어나온 조심스럽고도 끈질긴 생의 감각이 있었다.


초저녁 상습적인 산성비를 맞은 기관사가 가게 안으로 들어 왔다. 가게 안은 어둠침침했다.

가끔씩 들려 오는 거친 욕설, 술잔 부딪히는 소리, 트럼펫 소리.

기관사는 뒷자리에 앉아 그 연주를 들었다.

마치 자신의 숨소리까지 튀어나올까 두려운 듯,긴장한 표정으로.

누가 봐도, 그는 이 세계에 오랜만에 나타난 사람처럼 보였다.

연주가 끝나고, 미즈호가 그에게 다가왔다.

“왔다고 들었어. 시간 되면 들르라고 했더니 진짜 왔네.”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덕분에… 잘 들었습니다.”

“덕분은 무슨.”

미즈호는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술 마셔?”

그는 잠시 망설이다,

“조금.”

술잔이 오가고, 조심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선생님, 이 바닥에서 오래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데?”

"엔진 설계를 한 적이 있었죠. 세상이 내쳐 버린,…"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지금은 현장에서 일하신다고. 임원클래스에 들어도 들 거 같은데”

“그게… 사고가 있었어요. 오래전에. 내가 설계한 엔진이… 폭발했고, 몇 명이 죽었어요.”

미즈호는 조용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후로 자연스럽게 10년 정도 은둔했어요.

다른 일을 해보려고 했고, 기술서도 써봤고.

근데 소용없더군요.

가장 무거운 건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자격지심과 자책들이었어요.”

그의 시선이 잔속의 술을 천천히 따라갔다.

“최근에 다시 세상으로 나왔어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날 일으켜 세워주시고 돌아가셨죠.

지금은 현장에 들어가서 배우는 중입니다.”

“현장이라면 어디에?”

“민간 우주선 수리하는 회사에 있어요.

배 아는 놈이라고 데려가더니… 뭐, 허드렛일부터 하게 하네요.

3급 기관사 면허증은 있지만 승무경력이 없다고 회사에서 실습부터 해야한다고 하더군요. 조금이라도 받으면서 실습하는 게 어디냐고 말이죠. ”

“그러면 뭐 어때요.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3급부터 시작하면 되죠. 저는 5급부터 응시자격이 시작하는데요”

미즈호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맞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배우고 버티다 보면, 일기사가 되고 기관장이 되고 하겠죠.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기관사는 수줍게 웃었다.

어쩌면, 그 웃음은 몇 년 만에 지은 것일지도 모른다.

밖에서는 누군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악의는 없지만 진한 욕설이 간주처럼 끼어 들었다.

그 소리가 선술집 안까지 울려왔고, 두 사람은 말없이 웃었다.

그렇게 그날 밤,

기름 냄새 나는 선술집 한 켠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고독한 시간을 알아보았다.

연인도 친구도 아닌, 그저 한때 부서졌던 사람들끼리의 느슨한 동맹.

그들은 방파제에 앉아 항구를 낮처럼 밝히며 출어하는 수많은 고기잡이 배들을 배웅했다,

미즈호와 기관사는 그렇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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