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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영 Dec 24. 2024

용식의 트럼펫 - Part 3 (완결)

4.


그 유명한 백성태의 트로트 메들리가 시작됐다. 홀 안의 몇 안되는 사람들이 들썩거렸다. 주부로 보이는 30대와 40대의 여성 2명이 자신의 파트너와 무대로 나와 지르박을 췄다. 한복 차림에 하얀 고무신을 신은 40대 여성은 물찬 제비처럼 몸이 날랩했다. '사랑의 배신자여'가 흐르는 가운데 여자는 눈길을 산책하는 여우처럼 경쾌하게 스텝을 밟았고, 남자는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여자의 몸을 가볍게 돌려 주었다. 커플들은 연습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들은 그걸 배리에이션이라 불렀다.

얼굴이 불콰해진 수성로파가 새파랗게 젊은 까까머리 남자 하나와 들어 왔다. 까까머리는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 어깨를 심하게 건들거리며 걸었다. 수성로파가 영호 옆좌석에 앉으며 말했다.

'야, 이 지지바 어데 갔노?'

공연준비 하러 갔다는 영호의 말에 수성로파가 영호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니, 야가 얼마나 겁대가리 없는지 모르지? 이 새끼 소년원에서 기어 나온지 얼마 안된다.'

까까머리는 수성로파가 자신을 가리키자 어느새 너클 낀 주먹을 자기 손바닥에 다지며 히죽거렸다.

지배인이 다가와 굽신거리며 봉투를 하나 건넸고 수성로파는 까까머리에게 맥주 몇 잔을 먹이고 나갔다. 까까머리는 나가면서 이유없이 영호를 째려 보았다.


용식은 저녁이 되자 눈 꺼풀이 너무 무거워져 눈이 자꾸 감겼다. 팔에 힘이 빠지면서 조금 어지럽기도 했다. 땀을 흘리며 어떻게 마쳤는지도 모르게 간신히 공연을 끝냈다. 오늘은 용식의 큰어머니, 즉 아버지의 본처가 최근에 요양원에서 사망했고, 그녀의 마지막 수발을 들어준 여동생이 오기로 한 날이다. 그는 공연을 마친 후 옥련과 영호에게 먼저 포장마차에 가 있으라고 했다.

'누나, 딸 애가 지금 몇 살 이라예?' 영호가 옥련에게 물었다.

'여섯 살. 근데 좀 작고 아파. 성장 호르몬 이상이라든데, 그래 터너 증후군이라 카더라.'

'아이고. 그럼 나중에 심장이나 콩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래 말이다. 우야겠노. 그래 태어난 것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봐야지'

영호는 눈물을 찔끔거리는 옥련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많이 취한 수성로파가 지나가다가 그 장면을 보고 비틀거리며 들어 왔다.

'이것들이 이런 데서 연애질을 하고 있네. 야, 찌바야. 꿈에 한번 불러주면 어데 털 나나? 꿈에서라도 한번 더 보고 싶은데, 그걸 안 해줘?'

'문디, 마이도 처 먹었네. 언가이 묵었으면 가서 쳐 자거라.' 옥련이 소주를 마시면서 말했다.

수성로파가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똘마이는?' 옥련이 물었다.

'좀 있다 올거다. 근데 너거 둘이 사귀나? 야, 니 이 지지바 좋아 하나? 이 지지바 얼마나 못됐는지 모르지?' 수성로파가 옥련의 소주를 한잔 벌컥 마시며 영호에게 시비를 걸었다.

'시끄럽고, 한잔 더 할거면 앉거라'

옥련은 한 때 자기 친구의 남자였던 수성로파와 그나마 안면이 있는 터라 나름 편하게 지내는 거 같았다.

말이 없이 앉아 있던 영호는 잠시 후 볼 일이 있다고 자리를 비켰다.

'얼굴은 왜 그런데?' 옥련이 수성로파에게 물었다.

'아, 이거, 얻어 터진 거다. 내가 좋아하는 후배 지지바 오빠한테'

취해서 횡설수설하는 수성로파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는 대구의 어느 체육고등학교에서 한때 잘 나갔던 체조선수였다. 2학년 겨울방학때 연습하다가 팔목을 크게 다쳐 운동을 더 할 수 없어 몇 년 동안 건달로 굴러 먹다가 최근에 매형 밑으로 오게 되었다. 며칠 전에 수성못 부근에서 체조를 같이 했던 1년 후배 여성을 만났고, 저도 모르게 술 취한 모습으로 그녀 집 주변을 몇 번 얼쩡거리다가 형사인 그녀의 오빠에게 걸려 폭행을 당했다.

'그래서 눈탱이, 밤탱이 됐다.'

그는 약을 끊고 잃어버렸던 꿈도 다시 찾고 싶다고 말하면서 포장마차 테이블에 코를 박았다.

'그러고 보면 니도 참 애처로운 인생이다.' 옥련이 잔을 들이켰다.


'용식이 오빠.'

용식보다 키가 약간 큰 청바지 차림의 동생이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찾아 왔다.

그녀는 간호전문대학을 나와 경산의 어느 작은 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다.

'왔나! 밥은? 그래, 초상 치른다고 고생많았다. 니가 굳이 그래 안 해도 되는데'

'아무도 없다 아이갸, 그리고 큰 엄마쟎아. 우리랑 엄마한테도 참 잘했다 아이갸? 오빠, 니한테 촌의 집하고 땅하고 좀 남긴 거, 받긴 받을 거지?'

'그 촌구석 땅, 니 해라.'

'나도 마이 받았다. 주고 싶은 사람 마음 생각해서 그냥 고맙게 받아라.'


용식의 큰 엄마는 임신을 하지 못했고, 당시 마을에서 땅깨나 있었던 용식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에게, 가난하지만 뼈대가 있다는 집안의 젊고 건강한 여자를 붙여 주었다. 그녀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 주었다. 용식의 아버지는 1960년대말 서울대에 들어갔다. 개천에서 용났다고 마을 잔치를 크게 벌였다. 용식의 아버지는 노래를 잘했고 훤칠한 키에 얼굴이 희고 갸름해서 오십리내 거의 모든 젊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는 서울대에서 어느 참한 여학생을 만나 촌놈답게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몇 달 지나 자신의 부모에게 인사시키려고 그녀와 함께 촌으로 왔다. 동생에게 그녀의 뒷조사를 시켰던 용식의 할아버지는 그녀의 아버지가 월북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녀에게 다시는 내 아들을 만나지 마라고 호통과 호소를 했다. 용식의 아버지는 버티다가 결국 그녀와 헤어졌고, 그 날 이후로 술에 쩔었고 밤새 노름을 하러 다녔으며 서울대는 중퇴했다. 그러던 중 본처와 결혼했고 첩을 얻었다. 용식이 태어 난 다음 해에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러 갔고, 몇 달 뒤 상거지꼴이 되어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심한 알코올중독이었던 그는 술에 취해 배에서 선원들과 칼부림을 했고 크게 다쳐 거지꼴로 귀국했다. 돌아온 그는 노름하고 술먹고 기생질을 하다가 가산을 거의 탕진하고 어느 날 실종되었다. 항간에는 다시 배를 타러 부산으로 갔다는 소문도 돌아 본처는 용식의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부산 영도에서 몇 해 동안 살기도 했다. 실종되기 며칠 전에 아버지는 용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용식은 그때 '남자는 아들한테 미안하니 뭐 그딴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다음 달, 엄마 기일 때 올거지?'

동생이 용식에게 물었다. 몇 해 전부터 동생과 용식은 어머니 기일에 맞춰 아버지 제사도 함께 지내왔다.

옥련이 홀에 들어왔고 동생을 데리고 뭐 좀 먹인다고 포장마차로 갔다


5.


용식은 몸 상태가 더 나빠져 어쩌면 트럼펫을 더 이상 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팔을 다시 들었다. 손님이 한산했던 카바레는 일찍 파하려는 듯 테이블 위의 맥주병과 양주병들을 치우며 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용식은 마우스피스에 입술을 대고 버징을 했다.

Londonderry Air를 불렀다. 부대끼는 음과 음들을 모두 안듯이 나즈막한 레가토가 네 마디씩 이어졌다. 엄마가 해주는 옛날이야기같은 다정한 노래 소리가 얕으막한 푸른 언덕을 넘어 양떼를 지나 오두막을 지나 잔잔히 흐른다. 굵직한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거친 수염이 더부룩한 작고 추레한 모습이지만, 깊게 눈을 감고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한 음씩 정성스럽게 내었다. 피스톤을 누르는 손가락은 가늘게 떨렸다. 떠나간 사람들, 떠나 보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언제나 기억하겠노라고 용식의 트럼펫은 맹세를 했다. 언젠가 내가 떠나면 여기로 돌아 와라는 말에 그러겠노라고 답하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수성로파가 한구석에서 연주를 들으며 찌질하게 울고 있었다.

두 명의 파출소 순경과 함께 영호가 들어왔다. 수성로파는 그들에게 '쉿!'이라고 손가락으로 말했다.


용식은 옥련에게 고백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비록 트럼펫을 불 수 없게 되더라도 전자 오르갠을 밤새 연습하면 곧 익숙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는 옥련과 그녀의 아픈 딸과 함께, 그리고 음악과 함께 살아 가고 싶었다.

'꿈은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거야.'


몇 년 뒤 용식과 옥련은 지르박이 중심이 된 카바레 메들리 테이프를 출시했고, 그게 인기를 끌어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들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용식은 어느새 대구에서 알아주는 전자 오르갠 주자가 되어 있었고, 옥련의 허스키하면서도 시원한 목소리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다. 수성로파는 체육선생이 되었고 체조부 후배와 같이 살았다. 그들은 한번씩 수성로의 어느 포장마차에서 어울려 술을 마신다.




아래 링크에서 '용식의 트럼펫'과 관련있는 곡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브라스 밴드 행진곡 모음


트럼펫 연주곡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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