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최근에 몸이 한번씩 뒤틀릴 때가 있었나요? 눈꺼풀이나 입술이 저절로 떨리거나 하지는 않았고요?'
용식은 조금 그런 적이 있다고 했다.
'혹시 뭔 일 하세요? 손가락이나 목소리를 많이 씁니까?'
그는 나팔을 분다고 했다.
'지금으로서 잘라 얘기하긴 어렵지만 근긴장이상증이나 중증근무력증일 수도 있습니다. 특정 근육을 과하게 쓰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병이죠. 피아노나 트럼펫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약 1%가 걸릴 수 있습니다. 입 주위 근육이나 혀에도 발생할 수 있고요.'
'나을 수는 있습니까?'
'예, 그럼요. 근데 증상이 오래갈 수는 있습니다.'
의사는 지금은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용식은 의사가 잘 모르거나 뚜렷한 치료법이 아직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쩌면 트럼펫을 오래 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함께 우연히 읍내에 나왔다가 들었던,고등학교 밴드부의 나팔과 북소리는 소년 용식을 놀라게 했다. 읍에서 가장 넓은 시장앞 도로에서 쌍두취 행진곡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가슴으로 쳐들어오는 트럼본과 바리톤, 튜바, 수자폰 들의 묵직한 소리와 가장 앞에서 행진곡을 이끄는 퍼스트와 세컨드 2개의 트럼펫 섹션은 한 몸을 가진 두 마리의 독수리가 대화하듯 리듬과 선율을 주고 받았다. 때로는 천둥과 번개처럼 강렬하고 빠르게, 때로는 물처럼 부드럽거나 사슴처럼 껑충껑충 뛰어 다니면서 소년의 마음을 뛰게 했다.
분지의 열기는 아스팔트를 녹일 듯 뜨거웠다. 용식은 행진하는 악대부 뒤를 쫓았다. 북소리와 나팔소리가 땀과 범벅된 끈적한 소리를 쫓아 다녔던 어느 무덥던 여름날 밤에 용식은 결심했다.
'나도 저 소리를 낼 거야!'
그는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얘기했다.
'엄마, 나, 읍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 갈래. 먹는 거랑 집세는 내가 알아서 하께.'
용식은 촌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중, 작다고 자기를 괴롭히는 두 살 많은 애의 등을 돌로 찍어 1년 정도 정학을 당하고,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져 1년을 더 보내고, 결국 2년 늦게 선망하던 읍내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입학하던 날 교문 옆 음악실을 찾아 갔다.
'한번 불어봐'
상급생이 트럼펫을 내밀며 말했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마우스피스에 입술을 갖다 대고 나름 힘껏 불었지만 복어처럼 입만 봉그랗게 부풀 뿐, 피피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용식은 나팔 소리 비슷한 걸 냈다.
키가 아주 작은, 신입생들보다 더 작은 상급생이 스틱을 잡고 스탠드에 놓인 작은 북으로 시범을 보였다. 찰랑거리는 스네어 소리는 신입생들의 심장을 출렁거리게 했다. 이어지는 트레몰로와 오픈 림샷은 촌놈들로서는 처음 듣는 신비한 소리였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얇고 긴 철편들이 핑거스타일 기타에서의 어택뮤트처럼 착착 감기면서 가슴을 철썩거리게 했다. 이런 촌 구석에서도 단지 작은 북만으로도 얼마든지 신기한 세계로 갈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넋 나간 신입생들은 연주가 끝난 지 한참 지나 우와하며 박수쳤다.
용식은 트럼펫을 불게 되었다.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옥련의 키 큰 동생도 밴드반에서 처음 봤다. 그는 트럼본을 맡았는데 잘 어울렸다. 친구의 트럼본 소리는 힘이 있었고 믿음직 스러웠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여 멋있는 연주자로 살고 싶다고 얘기했고 용식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 응원했다. 오후에는 학교 뒷산으로 올라가 해가 질 때까지 빽빽거렸고 이따금씩 지나가던 어른들에게 욕을 얻어 먹었다. 용식은 자취를 했는데 오후 연습을 마치고 음악실에 밤 늦도록 남아 소음기를 끼우고 연습을 했다. 저녁은 건너 뛰고 최대한 늦게까지 음악실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학교 소사는 음악실의 불을 맨 나중에 껐다. 그가 음악실을 찾아올 때면, 어머니가 애써 마련해 준 언덕 위의 자취방으로 용식은 고개를 두개 넘어 돌아갔다. 자취방으로 돌아와서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 종이를 오랫동안벽에 붙이는 훈련을 했다. 숨이 차다고 느낀 그는 중학교 때부터 피웠던 담배를 끊기도 했다.
그는 선배들에게 스케일 연습, 롱톤 연습, 비브라토를 지도받았고, 소리를 만들고 가다듬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달 만에 애국가와 아리랑을 뗀 용식은 '타령행진곡'과 '태극이여 영원하라'를 불며 행진곡들의 향연에 뛰어 들었다. 그는 존 필립 수자가 작곡한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특히 좋아했고 잘 불었다.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딴딴따-따단'하는 트럼펫의 도입부는 마치 커튼이 열리듯 웅장한 신세계를 펼쳐 보였다. 발을 맞춰 행진하는 군대의 소리같은 힘차고도 경쾌한 도입부, 새처럼 재잘거리는 플루트 소리, 그러다가 천둥같은 파라파라파라빰빰으로 놀래키는 믿음직스러운 중저음의 트럼본과 튜바, 마침내 모든 악기들이 모여 마치 큰 싸움에서의 감격적인 승리를 자축하는 대규모의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절정 부분은 언제 들어도 감격스럽기 그지 없었다. 용식의 행진곡과의 열애는 계속되었다. 음악선생은 용식에게 인근의 음대 진학을 종용했지만 용식은 해군 군악대를 지원했다. 그는군악대에서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트럼펫을 불었다. 선임들은 용식과 트럼펫, 둘이 같이 살림사냐고 물었고 실제로 용식은 자신의 트럼펫에 이름을 붙여주고 소중히 다루었다. 그 이름은 옥련이었다.
한 때 7명까지 갔던 밴드는 이제 가수까지 쳐 2명이 되었다. 밴드 수가 줄었어도 조명 버튼은 여전히 용식의 손에 있었다. 빠른 곡이면 상대방의 동선이 보일 정도로 조금 밝게 했고, 블루스 곡에서는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껌껌하게 낮추었다. 음악이 진행될 수록 춤추는 사람들간의 틈은 점점 좁아졌고 포옹하고야 만 커플들의 체온은 뜨거워졌다. 춤을 추는 동안 불빛은 거의 없었다. 여기를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상대방의 손목이나 실크로 감싼 허리가 그리운 사람들이다. 남편을 해외로 내보내었거나 남편이나 자식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여자들은 억눌려왔던 자유를 발산시키려 왔고, 그런 여자들의 손목을 잡으려고 춤추는 남자들이 왔다. 그들은 베니굿맨의 스윙에 열광한 1920년대 미국의 젊은 세대들이 추었던 지터벅(Jitterbug)을 다소 부드러운 형태로 변형시킨 지르박과 새까만 조명 아래 서로 꽉 붙은 상태로 껴안고 추는 한국식 블루스를 추려고 왔다.
아직 테이블이 텅텅 빈 초저녁에 젊은 이혼남 영호가 방문했다. 옥련이 그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옥련이 누나, 몽마르트 언덕에 생겼던 초기의 카바레가 원래 실험적인 예술을 즐기려던 목적이었다는 거 알죠? 브레히트라는 유명한 극작가는 군국주의 독일치하에서 전쟁터 총알받이로 쓰러지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카바레에서 공연하기도 했어요. 카바레에서 춤은 원래 목적이 아니었죠. 술은 더 더욱 아니고,.. 우리나라에 어떤 게 들어오면 이상하게 둔갑을 하는데, 누나는 왜 그렇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이 약해서 빨리 취하나?'
'이런 데 와서라도 한번 씩 기마이해야, 풀고 또 살아 가지.' 별 게 고민이라는 투로 옥련이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 눈탱이가 퍼렇게 멍든 수성로파 수금재이가 혼자 와서 술을 퍼마셨다. 가끔씩 혼자말로 누군가에게 욕지꺼리를 하다가 자조 섞인 짧은 욕과 함께 고개를 떨구곤 했다.
수성로파는 옥련에게 말을 던졌다.
'야, 조덕배 '꿈에' 한번 불러봐.'
'아직 시간이 안 되었어예.'
'지지바야. 부르라면 불러.'
'와 그라는데, 양아치 새끼야!'
'이 지지바가? 니 여기 조금만 있거라.'
수금재이는 씩씩거리며 나가다가 옥련이 술값 내놓고 가라고 하자 만원짜리 몇 장을 입구에 서 있던 웨이터에게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