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음악을 출산한 항구들
항구는 경계가 무너지는 곳입니다. 낯선 배가 도착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리듬과 악기와 함께 내렸고, 떠나는 사람들은 그 도시의 슬픔과 정열과 아쉬움을 안고 떠났습니다. 각 국의 항구는 탱고, 재즈, 파두, 삼바, 엔카, 트로트 등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음악을 잉태하였고 낳고 키워왔습니다. 사람들 옆에 머물면서 용기와 위로를 주고자 했던 음악과 노래를 탄생시켰던 항구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첫 항구로 파두의 고향, 리스본의 모우라리아 지역을 소개합니다.
리스본의 테주강이 대서양과 몸을 섞는 곳, 그 축축한 바닷바람이 가장 먼저 닿는 언덕 아래 '모우라리아(Mouraria)'가 있습니다. 이곳의 담벼락들은 항구의 습기만큼이나 눅눅하고 무거운 슬픔을 머금고 있습니다. 19세기, 항구의 부랑자들과 이민자들이 뒤섞여 살던 이 위태로운 골목에서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음악, '파두(Fado)'가 태어났습니다.
모우라리아는 이름 그대로 '무어인(Moors)들의 거주지'라는 뜻입니다. 800년에 걸친 레콩키스타가 끝난 후에도 북아프리카로 돌아가지 못한 이슬람교도들은 이곳에 남겨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척박한 터전 위로 남편과 아들을 바다로 보낸 가난한 여인들도 모여 들었고, 항구를 통해 들어온 브라질의 해방된 노예들과 시골에서 상경한 노동자들이 섞여들며, 이곳은 거대한 slum이자 삶의 용광로가 되었습니다.
파두의 시작이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브라질 해방 노예들이 가져온 '룬두(Lundu)'는 본래 관능적이고 흥겨운 춤곡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리듬이 모우라리아의 좁고 어두운 미로에 정착하며 춤은 사리지고 노래 중심으로 변형되었습니다. 모우라디아의 상실감과 우울, 그리고 무어인들이 남긴 서글픈 선율이 흥겨웠던 브라질의 비트와 결합하면서,처절한 보컬, 애절한 멜로디와 빈자들의 고된 삶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파두라는 비극적 전형이 만들어 것입니다.
파두를 구성하고 있는 단음계(Minor Scale) 기반의 애조 띤 선율, 꺾고 넘기는 비브라토는 엔카, 트로트와 유사하여 우리 귀에도 낯설지 않습니다. 기타 반주 또한 규칙적으로 2박자나 4박자의 리듬을 짚어주는데, 이는 브라질의 룬두와 아프리카 리듬이 리스본에 정착하면서, 춤추기 좋게 딱딱 끊어지는 리듬감으로 남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라틴어 '파툼(Fatum, 운명)'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파두는 항구 도시가 숙명처럼 안고 사는 '이별'을 노래합니다. 먼바다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나 연인을 기다리며 부르던 '사우다드(Saudade : 영구적이고 회복불가능한 상실, 이로 인한 지속적인 손상, 즉 갈망 또는 그리움)'의 정서는 우리네 '한(恨)'의 그것과 깊게 맞닿아 있습니다.
최초의 파두 예술가로 알려진 19세기 초의 마리아 세베라는 신분이 낮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귀족인 비미오소 백작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백작이 투우나 공무를 위해 배를 타고 떠날 때면, 세베라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모우라리아의 창가에서 검은 숄 차림으로 기타를 치며 그가 탄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녀가 26세에 요절했을 때, 리스본 사람들은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항구의 찬 바람을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렸기에 폐가 굳어버린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오늘도 모우라리아 카펠랑 거리에는 파두의 전설 마리아 세베라의 집이, 그리고 담벼락 곳곳에는 검은 숄을 두른 채 눈을 감고 노래하는 파디스타(Fadista)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골목 끝까지 스며든 짠내를 맡으며 그들은 오늘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노래합니다.
리스본 파두와 코임브라 파두로 구분이 되는데 이 둘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곡 Fado de Santarém은 마리아 세베라가 생전에 즐겨 부른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바이오스백작이 투우 경기를 하던 산타렝 지역을 노래합니다.
"모우라리아의 카펠랑 거리에서 세베라가 노래하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세베라의 테마곡 Rua do Capelão(카펠랑 거리)입니다. 리스본 파두의 상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부릅니다.